[기독교독후감] `늦봄 문익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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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신대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 ‘문익환’. 평소 교과서나 어떤 곳에서도 그의 업적이나 사상 등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수업시간의 과제로 목사님이 지으셨던 책도 보고, 전체 댓 거리 시간에 영상물도 보고, 선배들을 통해서 조금이 남아 그분을 알게 되었다. 문익환은 처음부터 민중 속에서 투쟁의 선봉에 섰던 것이 아니다. 그는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나와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휴학도 다녀오고 교회도 개척 하였다. 그 교회가 지금 서울에 있는 한빛교회이다. 이후 구약강의도하고 성서 번역을 위해서 목사직을 물러나게 된다. 그 후 윤동주나 장준하의 죽음에 자극을 받으면서 불의에 대한 민중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전태일의 죽음을 보고 편한 길을 버리고 민중 속에 뛰어 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문익환의 삶을 돌아본다면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불의의 대한 대항을 보며 또한 주위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의 생각이 조금씩 민중들을 향해 변해 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민중의 앞에서 서다보니 감옥에 가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때마다 전혀 후회하고 지치지 않고 오히려 감옥 안에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즐거워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존경스러운 것은 우리가 서로 꺼려하고 피하고 두려워했던 문제이지만 누군가는 앞서서 해결하고 실천해야 했던 통일문제에 앞장섰던 것이다. 1989년 그는 국가 보안법을 어겨 가면서 북측에 올라갔다. 그는 김일성을 만나서 4.2남북 공동 성명서를 통해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합의 하였는데 놀랍게도 몇 년 전 성사된 6.15 공동 선언서의 내용에 기초가 되고 비슷한 내용도 있다. 그만큼 문익환은 통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앞을 보았다. 그는 돌아와서 말도 안 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통일의 관련된 조직에 앞에 섰고, 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자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