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 생애 & 고향회귀의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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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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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오장환(吳章煥)론
Ⅰ. 생애
오장환은 1918년 5월 15일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농업을 하는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22세 차이가 나는 둘째 부인으로, 본처가 죽자(1929) 오장환이 14세 되던 1931년에야 정식으로 혼인 신고가 되고 비로소 오장환은 호적에 서자 (오장환은 처음에 적자로 잘못 신고되었다가 다시 서자로 정정, 큰어머니 사망 후에 적자로 바뀜)성장 환경에서 어머니가 후처라는 사실이 그를 콤플렉스에 빠지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특수한 가정 환경요인은 시대 상황과 연관되면서 유교 관습에 대한 그리고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부정의식을 표출하는 하나의 기저로 작용한다. (양혜경, 『한국 현대시의 공간화 전략』78~79쪽)
에서 적출로 오르게 된다.) 오장환 시인에게 아버지는 인간을 억압하는 유교적 권위주의를 지닌 인물로, 그에 반해 어머니는 그러한 봉건주의의 희생자로 다가온다. 때문에 아버지는 가장이지만 부정하고 싶은 대상이고, 아버지가 오랜기간 동안 유교적인 권위주의의 터전으로 자리 잡아온,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역시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억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회귀하고 싶고 다가서고 싶은 긍정적인 대상이다.(김현정, 『한국현대문학의 고향담론과 탈식민성』42~43쪽)
오장환은 1927년 10살 되던 해 제2의 고향인 경기도 안성군으로 이사를 한다.
오장환은 1930년 안성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상경하여 중동학교 속성과를 수료한 뒤 이듬해 휘문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시인 정지용과의 만남도 휘문고보에 들어가면서 이루어진다. 오장환은 휘문고보 3학년 때인 1933년 11월에 그의 첫 번째 시 「목욕간」을 ≪조선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장시 「전쟁」도 이 때 쓴 것이다. 이어서 다음해에 ≪조선문학≫에 연작시 「카메라·룸」을 발표하였다.
그 후 1935년에는 휘문고보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동경 유학’의 사유로 자퇴를 한다. 이듬해 4월에 일본에 건너가서 동경의 지산중학교에 전학하였다. 1936년 3월에 지산중학교를 수료했으며 8월, 서울로 호적을 옮겼다.【시인부락】, 【낭만】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시작활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는 1937년 3월에 다시 일본 명치대학에 입학하였고, 【자오선】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작 활동을 하였다. 오장환은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동인에 참여하면서 시작활동이 본격화되었고, 이들 동인들과 끝까지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성범, 이육사, 서정주, 민태규, 김광균 등과는 내왕이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학동, 『오장환 평전』,45~47쪽)
그해 8월 첫 시집 『성벽』이 자비로, 풍림사에서 간행되었다.
오장환은 다음해 아버지의 사망으로 명치 대학 전문부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물려받은 유산을 기반으로 서울 종로구에 남만서방을 경영하였고, 여기서 그의 두 번째 시집 『헌사』를, 자신을 발행인으로 하여 출판했다. 김광균의 첫 시집 『와사등』과 서정주의『화사집』도 여기서 간행되었다.
나이 28세 되던 해, 신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광복을 맞이하였다. 8·15를 계기로 시집 『병든 서울』을 쓰기 시작하였다. 1946년 2월, 퇴원하여 조선 문학가 동맹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퇴원하여 좌익단체에 참여하면서 그의 시세계도 크게 전환한다. 개아(個我)의 서정성보다는 민중과 좌경적 이데올로기에 기울어지면서 정치색을 짙게 띠게 된다. 그는 남한에서 좌익문화 단체가 주관하는 갖가지 행사를 앞장서 주재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김학동, 위의 책, 61쪽)
오장환이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된 것은 그의 초기시에 나타난 진보사상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의 사상적 전향은 8.15해방 이후로 봄이 타당하다. (김학동, 위의 책, 53쪽)
5월, 역시집인 『에세-닌 시집』을 간행했으며 7월에 세 번째 시집『병든 서울』을 간행했다. 1937년 7월에서부터 1945년 8월 사이에 쓴 작품들을 묶어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