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논평

 1  제1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논평-1
 2  제1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논평-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제1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 논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논평
친일청산을 위해 만들어진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는 친일청산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이 두 단체를 통해 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청일청산에 대한 구조적 성격과 앞으로 청일청산을 위해 하기 위한 역할과 남은 과제가 많다. 일제 통치 하에 있던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 후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우리나라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독립 운동가들이 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식민통치에 동참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들이 있다. 해방 이후 친일 세력과 식민통치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의도로 두 국가기구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친일파의 재산을 압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해방 후 66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방 후 미군정은 반공과 사회 체제의 유지를 위해 친일파 관리들을 대부분 그대로 등용하고 그들에 대해 우호적이 정책을 펼쳤다. 이후 제헌국회가 창립 될 때에도 친일파를 제외시키려는 노력 또한 실패했다. 심지어 이승만은 자신을 지지하는 친일파 세력들을 보호하기 위해 친일파 청산을 위해 조직된 반민특위 또한 강제 해산시켰다. 또한 ‘국회프락치사건’을 일으키며 친일청산에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에는 ‘반민법’이 폐지되면서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해방이후 우리나라에 있는 친일파들은 대부분 군, 경찰, 사법부에 있었다. 또한 문화, 교육, 예술 분양에서도 일제 세력이 많이 남아있었다. 반민특위가 해체된 이후에도 친일세력을 제거해야한다는 여론은 여전히 많았다. 8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과 함께 친일청산 문제가 다시 역사적 관심을 얻게 되었다. 청일청산의 움직임은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 기구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 1991년 설립된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 작업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시발점이었다. 민간 기구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친일청산 요구는 국가적 범위로 확대되어 여러 법률안이 제정되고 반민규명위가 출범되었다. 민간단체로부터 시작된 친일청산의 노력이 국가 단위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반민규명위’와 ‘친일재산조사위’는 친일파들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을 수행하면 수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적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당사자들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규정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외됐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그들의 재산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태가 바뀌어 국가로 귀속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 한계아다. 친일청산이 이러한 어려움과 한계를 갖고 있는 이유는 5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국가의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 의식의 문제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친일청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친일파들의 후손 중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일청산에 대한 국가적 노력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이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친일청산에 관한 기사가 많다. 최근 친일세력에 대한 처벌과 그들의 재산 귀속을 위한 노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현제 우리 사회에서 하고 있는 이러한 시도는 한계가 있다. 우선 해방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해방을 경험했던 사람 중 현제 생존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당시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친일청산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일제와 친일세력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 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고 그들의 재산은 형태가 변화 되었거나 사라졌다. 친일청산은 해방직후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 당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방직후 정치가들은 친일청산보다는 권력 쟁취와 반공에만 관심이 있었다.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기는커녕 그들에게 다시 힘을 실어 주었다. 국가의 발전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했던 사회 지도층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친일청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일본의 과거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태도 또한 문제이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게 식민지배에 대한 정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식 사과를 안했기 때문에 세계가 일제의 만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식이 적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친일청산 문제에 대한 내용은 매우 적다. 특히 입시위주의 교육에 성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친일청산 문제는 더욱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에 일제치하로 인한 피해와 친일청산 문제의 심각성을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고 교사들 또한 입시위주 교육만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