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포르투갈에 대해서 포르투갈 자연 포르투갈 역사 포르투갈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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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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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정식이름은 포르투갈공화국이다. 포르투갈은 유럽 남서부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는 리스본이고 인구는 현재 1008만 4200명 정도, 인구밀도는 109명/㎢이다. 포르투갈의 면적은 약9만 2389㎢이다. 포르투갈어를 쓰고 종교는 가톨릭교이며 유로 화폐를 쓰고 있다.
1. 자연
지질계통은 거의 에스파냐의 연장이며, 북부는 화산성 변성암과 관입암으로 이루어졌고, 단층과 온천이 있다. 테주강 이북의 동부국경에서 남서로 뻗은 산괴는 모두 메세타(에스파냐 내륙대지)의 서쪽 가장자리가 되며, 규토층이고 화강암과 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 메세타의 서쪽 가장자리를 이루는 알토알렌테주 지방도 거의 같은 지질이지만, 해발고도는 200m까지 내려간다. 에스트레마두라지방 등 연안지방은 트라이아이스기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테주강과 사도강에 의한 충적평야가 남서부 저지를 형성한다. 지형은 이베리아반도 중앙을 서쪽으로 흐르는 테주강 이북은 기복이 심한 산악성이고, 남부는 평야와 낮은 대지로 이루어졌고 기복이 완만하다. 북부의 산괴는 해발고도 1000m에 달하는 것이 많고, 가장 높은 산은 에스트렐라산맥의 주봉 에스트렐라산(1991m)이다. 주요하천 도루강테주강이 모두 에스파냐에서 흘러든다. 북부는 하천이 북동에서 남서를 향해 흐르지만, 남부는 알트알렌테주에서 카르데이랑산지에 걸쳐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하천은 남동에서 북서로 흐른다. 테주강을 경계로 남쪽과북쪽의 식물상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북부 산악지에는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많고, 밤나무와 느릅나무도 있다. 남부에는 코르크나무와 감탕나무무화과나무가 많다. 올리브는 중부에서북부에 걸쳐 도루하곡(河谷)에 널리 분포하며, 산악지방에는 염소와 사슴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에스파냐와는 달리 숲이 많고 들판에 여러가지 들꽃이 아름답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온화하다. 북부는 겨울에 북대서양 저기압이 탁월하고 메세타와 시베리아의 고기압이 발달되며 기온이 하강한다. 북동쪽 산악지방과 에스 트렐라산지에 눈도 오지만 강추위는 드물다. 남서부는 해양성서안형에 가까운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비가 온다. 남단부는 가끔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아 고온일 때도 있다. 연평균기온 12~27℃, 최고평균기온 22℃, 최저평균기온도 브라간사가 6.2℃이다. 연강수량은 미뇨지방 1000~2000㎜, 리스본 800㎜ 미만이다.
2. 역사
선주민은 이베로족이라고 불렀으며, BC 7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침입한 켈트족과 혼혈하여 BC 3세기 말부터 고대로마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주민들 언어 대신에 라틴어가 쓰였으며,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건설되어 그때까지 고립되었던 지역들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쇠퇴와 함께 북방에서 들어온 게르만족이 브라가에 수에비왕국을 세웠으나 6세기 중엽 서고트왕국에 합병되었다.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침입해 온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이베리아반도의 태반이 약 8세기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베리아반도 북부에서 시작된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는 카스티야왕 아폰소 6세 밑에서 크게 진전되었다. 1096년 프랑스의 기사(騎士) 앙리 드 부르고뉴에게 아폰소 6세는 미뇨강과 도루강 사이의 포르투갈 백령(伯領)을 할양해 주었고, 아들 아폰소 엥리케시는 43년 레온 카스티야에서 독립하여 코입브라를 중심지로 포르투갈왕국을 세웠다. 그 뒤 역대 국왕들은 레콘키스타를 계속하였으며 13세기 중엽 지중해까지 도달하였다. 디니스왕 치세 때 국내의 식민이 이루어져 트루바두르(음유시인)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14세기 중엽부터 페스트와 대카스티야전쟁으로 포르투갈은 심각한 사회적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 국내는 친카스티야파와 독립파로 분열되었고, 1385년 승리를 쟁취한 독립파가 주앙 1세를 국왕으로 선정하여 아비스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해상(海商)부르주아지의 지원을 받은 아비스왕조는 해외진출 정책을 폈다. 주앙 1세의 아들 엥리케시 항해왕자는 서아프리카 탐험을 지휘하였고, 1498년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항로를 발견하였다. 아시아의 향료가 해로를 통해 직접 유럽에 수입되었으며, 리스본은 큰 번영을 누렸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 고아에 동양을 지배하기 위한 거점을 두고 통상권을 확대시켰으며 예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 그러나 번영은 16세기 중엽부터 사양화되었고 1580년 에스파냐에 합병되었다. 1640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주앙 4세는 브라간사왕조를 세웠으나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과의 종속관계를 다져 나갔다. 인도의 향료 교역을 잃은 포르투갈은 17세기 브라질에 설탕산업을 일으켰고, 18세기에는 브라질에서 대량의 금 생산으로 크게 부를 쌓았으나 그 태반을 국외로 유출시켰다. 주제 1세 밑에서 독재한 폼발후작은 경제적 회복에 힘써 18세기 말엽에는 상당히 회복시켰으나, 1807년 나폴레옹군 침입과 반도전쟁으로 다시 위기에 빠졌다. 영국은 왕실을 브라질에 도피시켜 브라질시장에서 큰 특권을 얻게 되었다. 브라질이라는 독점시장을 잃은 본국의 부르주아지들은 1820년 자유주의 혁명에 성공, 입헌왕정을 확립하였다. 34년 절대주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상업 부르주아지는 국유재산으로 몰수된 교회령을 구입함으로써 농업부르주아지로 전향하였고 귀족들과 타협하여 봉건제도로 존속시켰다. 포르투갈은 농산물을 영국에 수출하고 영국으로부터 공산품을 수입함으로써 영국의 자유무역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51년 이후 쇄신당(刷新黨)과 진보당의 양당정치로 정국은 안정되었고 <쇄신>이라는 이름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불황은 대영수출이 벽에 부딪치자 새로운 활로를 아프리카식민지에서 찾아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잇는 영토확장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아프리카의 종단정책(從斷政策)을 추진하던 영국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쳤으며 영국정부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다. 이로써 왕당정부(王黨政府)는 국민의 신망을 잃었고 마침 재정위기와 정세불안으로 1910년 10월 리스본에서 공화혁명이 일어나 국왕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이 혁명은 도시 중산층의 지지를 얻은 A. 코스타 등 공화주의자들이 정교 분리와 이혼법 승인 등 반교권주의적 정책을 세웠으나 곧 공화당은 분열되었고 제 1 공화정 16년간의 특징인 정세불안이 시작되었다. 제 1 차세계대전에 참전한 17년 12월 우파 군인 S. 파이스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카리스마적 인기를 이용해 18년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파이스는 12월 리스본에서 암살되고 북부에서는 왕당파가 왕정을 선언하는 등 정세불안은 극에 달하였고 전후의 경제위기와 노동공세가 겹쳐져 제 1 공화정은 완전히 벽에 부딪쳤다. 26년 5월 우파군인들 쿠데타가 성공하여 카르보나장군의 강권정치를 통해 질서회복을 시도하였고, 심각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쿠임브라대학 교수 A.O. 살라자르를 재무장관으로 앉혔다. 살라자르는 약 1년 동안 여러 해 쌓인 재정적자를 해소시키고, 32년 자본가와 지주교회와 군부가톨릭과 지식인 등 우익세력의 지지를 받아 수상에 취임하였다. 33년 조합주의(組合主義)와 <신국가> 체제가 수립되어 36년의 에스파냐내전 이후부터는 점차 파시즘으로 기울어졌다. 제 2 차세계대전 때는 중립을 지켰고, 전쟁 후에도 교묘한 외교정책과 강권정치로 독재체제를 유지 강화시켰다. 그러나 그 독재체제는 61년부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시작된 독립해방전쟁으로 흔들리기 시작해 68년 살라자르가 은퇴하고, M. 카에타노가 수상에 취임하였다. 74년 4월 25일 식민지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운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반세기 가까이 계속된 독재체제가 무너졌다. 좌익군사정권은 앙골라모잠비크 등 식민지독립을 승인하였고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을 단행하였다. 76년 민정이양 후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신헌법이 만들어졌다.
3. 정치
대통령중심제 공화국으로, 1974년 쿠테타를 거쳐 76년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신헌법이 만들어졌다. 79년 12월 조기총선에서 중도우익계 사회민주당 중심의 민주연합(AD)이 사회당 등 좌파세력을 누르고 과반수를 차지, 혁명 후 첫 중도우파 정권 카르네이내각이 탄생하였다. 82년 9월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정부로 이양하는 헌법개정을 통해 군정을 종식하였고, 83년 4월 총선거로 M. 수아레스 총리의 사회당이 제 1 당으로 승리, 사민당과 중도좌파연립내각이 구성되었다. 85년 6월 경제정책과 관련, 사민당 각료 전원이 사임하자 A.S.P. 에아네스대통령은 7월 국회를 해산, 10월의 총선에서 카바코 실바의 사민당이 제 1 당의 지위를 획득, 중도우파연립내각이 발족되었다. 86년 2월 대통령선거에서 좌익연합 소아레스 전수상이 당선되었고, 좌익진영의 내각 불신임에 따른 87년과 91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2001년 집권 사회당이 참패한 데 책임을 지고 구테레스 총리가 사임하고 삼파이오 대통령은 의회해산을 명령했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수상을 지명한다. 의회는 단원제이고, 의석수는 230석이며 임기는 4년이다. 선거권은 18세 이상의 남녀에게 주어지며,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당, 사회민주당과 통일민주동맹, 민중당 등이 있다. 포르투갈 본토에는 지방행정으로 18행정구가 있고 정부가 임명하는 지사(知事)가 관장한다. 행정구는 약 400개의 시읍면으로 나누어져 있고, 주민이 시읍면 의회의원을 선출한다. 시읍면 의회는 행정을 담당하는 위원회를 선출하며 이 밖에 시읍면 단위의 상공위원회심의회가 있다. 대서양의 아조레스와 마데이라 제도에는 어느 정도의 자치권이 인정되고 있다.
4. 외교
살라자르의 독재정권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파시스트적이라고 지목받았으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방측 일원이 되었고, 55년 UN에 가입하였다. 60년대 후반부터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독립전쟁이 격화되어 포르투갈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74년 쿠데타 후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식민지 독립을 용인하였다. 79년 2월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81년 3월 쿠바와 단교하였다. 86년 1월 유럽공동체(EC;EU)에 정식 가입하였다. 87년 실바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마카오를 99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