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

 1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1
 2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2
 3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3
 4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4
 5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5
 6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6
 7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7
 8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부르크하르트 호이징가 츠바이크 벤야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역사학에서의 메타포
- 目 次 -
머리말
본문
1.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2. 호이징가(John Huizinga, 1872~1945)
3.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4.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5. 이미지 사용의 주의점
맺음말
머리말
유사성의 구조를 자신의 특징으로 하고 있는 메타포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타포는 역사과학에서 매우 특수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메타포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한눈에 그려 보인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 과 같은 표현 방식은 한 시대를 개념화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상을 그려 보인다. 이러한 표현들이 개념적인 구분능력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관조성 미적(美的) 체험에서 감동(感動)과 함께 근본적인 계기를 이룬다. 감동이 동적 ·정의적 ·주관적임에 대하여 관조는 정적 ·지적 ·객관적이다. 이와 같은 심리적 태도는 일반적으로 미(美)나 예술을 감상하는 경우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에 대학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츠바이크에 표현에 따르면 역사는 시대의 다채로운 화훼전시장이 된다. 이처럼 역사를 다룬 것은 대범하게 말하면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역사란 바로 폭넓은 문화사를 의미하였고, 역사 서술에서 미적 요소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 심미적인 역사가들은 지난날 역사가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서간, 시, 소설, 설화, 일화, 음악, 무용, 그리고 조형예술에서 문화적인 이미지, 주제, 이념, 양식 등을 구성했다. 또한 국가, 종교와 더불어 역사의 세 가지 힘으로 ‘문화’를 강조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이들의 문화사적 사상을 통한 역사학에서의 메타포에 대해서 살펴보자.
본론
1.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부르크하르트는 정치사건에 대한 이야기식 서술을 포기하면서 이를 문화사적인 이미지들의 묘사로 대체했다. 부르크하르트는 현재를 위한 역사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살고 있던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다. 날로 더해가는 대중의 지배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를 위기, 혼돈, 파국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러한 현재에 직면하여 과거의 상태에 대한 고찰로 관심영역을 옮겼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조망 가능한 과거와 조망 불가능한 현재의 이원성은 근본적인 것이며 뒤에 호이징가는 이를 수용하여 한층 더 발전시켰다.
2. 호이징가 (Johan Huizinga, 1872 ~ 1945)
19세기말 문화사는 호이징가에 의해 계승된다. 그는 부르크하르트처럼 정치사를 배격하고 그의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또한 어떠한 철학적 체계나 추상적 개념과 같은 것을 멀리하면서 역사를 조용히 관조했다.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정치사와 같이 왕조의 성쇠나 하나의 사건이나 요인에 의해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당시의 정신,예술, 사상등 다원적인 측면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다.
오늘날 문제시되는 갈등은 더 이상 위대한 인물들의 대립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에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대중적인 현상, 경제문제,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발전경향들이다. 역사는 이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근대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도래했고 이와 함께 역사적인 조망성과 이미지가 사라지게 되었다.
호이징가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근대 북미의 역사는 더 이상 ‘그림으로 그릴’ 수 없게 되었다. 근대 역사는 더 이상 ‘정신적인 창조물’이 아니며 이미지를 생성시키지 않는다. “한때 그렇게 무성했던 나무, 역사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다렸던 나무는 이제 쓰러질 운명에 처해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상상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건이 성격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에 꽃은 시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