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

 1  [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1
 2  [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2
 3  [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3
 4  [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교육학개론] 삶에 대한 성찰 -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어제의 삶을 성찰하며 내일을 본다.
과제를 하기 앞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주제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나의 삶은 뭐지? 나의 삶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성찰하라는 걸까. 등등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썼던 반성문이 떠올랐다. 아침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엄마께 혼나고, 반성문을 쓰고 난 후에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 때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반성문이란 걸 처음 써보는 나에겐 무척이나 암담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종이 맨 위에 이름을 적고 내가 혼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자 내가 잘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종이에 내가 잘못한 것들을 적고, 그 다음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각오를 썼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하는 말을 적었다. 이렇게 나는 무사히 반성문을 쓰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30분간의 짧은 시간을 돌아보는데 꽤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수업이 2교시나 지나서 학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난 2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려 한다. 한두시간의 짧은 시간으로 모든 걸 돌아 볼 수 없다는 걸 안다. 또한 이 과제의 목표가 단순히 지나간 삶을 생각해보라는 것이 아닌 것도 안다. 이제부터 21년이란 시간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내 꿈과 미래를 찾아보고자 한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우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했다. 대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자라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왔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장애아동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특수교사가 되고자 했던 동기가 몇 가지 있다.
먼저, 나에게는 정신지체를 가진 사촌동생이 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7살 땐가, 수영장에 같이 갔던 적이 있다. 사촌동생이 풀장 안으로 들어가자 물속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버렸다. 다가가면 괴물을 보듯 소리치며 달아나기 일쑤였다. 같이 옆에 있던 나에겐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렸을 땐 사촌동생이 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다. 그저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또래 아이였다. 그러다가 점차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사촌동생에겐 장애가 있었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사실 원래 내 꿈은 특수교사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성적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었다. 의대 공부도 너무 힘들 것 같았고,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특수교사라는 꿈을 다시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교사가 된다는 것 역시 용기가 없었다. 내가 과연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하면 내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한없이 깎아 내리고 열등감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이런 나를 바꿔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친구들과 갔던 봉사활동이었다. ‘평화의 집’이라는 장애인 시설이었다. 그 곳에는 주로 나이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그런데 그 중 어린 초등학생이 한명 있었다. 류재건이라는 아이였다. 자폐를 갖고 있는 아이였지만 누구보다 밝고 건강했다. 경찰관이 될 거라던 재건이의 당당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찰관이 돼서 무얼 하고 싶은지 또박또박 말했었다. 그 때 2가지를 느꼈었다. 이 작은 아이도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데 자꾸 숨으려고만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도 좀 더 당당하게 살고 싶었고, 내 자신을 믿기로 했다. 두번째는 이 아이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재건이 뿐만 아니라 정신이건 육체건 장애가 있어도 그들 역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난 그들이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꿈을 이루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이때부터 특수교사가 되겠다던 꿈이 더욱 확고해졌다.
예전에 외숙모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나중에 사촌동생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면 눈이 안 감길 것 같다고 하셨다. 장애인을 돕겠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의 손과 발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므로 약자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렇게 평생 약자로만 머무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장애라는 것을 자신을 가둬버리는 틀로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많다. 손가락 4개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 이희아씨나 청각장애인 박사1호 안영회씨, 뿐만 아니라 무던한 노력과 연습으로 페럴림픽에서 국가대표로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장애가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면 훌륭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렸을 적부터 적절한 교육을 받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도와주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
누굴 가르치긴 위해선 3배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아동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선 내가 그들보다 적어도 3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학교에서 기본지식들을 쌓아야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고 해서 이론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장애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특히, 지도법이나 교수법 등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책상에서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자활도 많이 다니며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곰두리 자활을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냥 봉사활동으로 갔던 때와는 달리 특수교육과 학생으로서 가는 첫 봉사활동은 굉장히 설렜다. 일단 마음가짐부터 달랐던 것 같다.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닌 앞으로의 내 꿈을 펼칠 곳이라고 생각하니 더 애착이 가고 신중했다. 하지만 설렜던 것만큼 걱정도 많이 되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사실 막상 가보니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이론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미리 생각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는데 정말 예상했던 거와 부딪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막막했다.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니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었던 것 같다. 아동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까지에는 무수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진심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 곳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의 태도와 눈빛말투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또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나중에 관심과 애정, 진심이 있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
내가 특수교육과에 다닌 다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다른 과보단 임용률이 좋지?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사는 굉장히 편하다던데?’ 라는 말을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나 너무 속상하다. 물론 다른 중등과 보다 임용률이 좋을 수도 있고, 일반학교에서의 특수교사가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이라면 나는 특수교육과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특수교사보다 더 나은 직업도 많고 편한 직업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특수교사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고 나 스스로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도 내가 싫다면 그건 좋은 직업이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나에게 특수교사라는 것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사회에도 가치 있는 일이고 나 스스로의 발전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특수교사를 통해 내 삶에 희열을 느끼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적어도 나중에 내 삶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위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냥 단순히 과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돌아보고 내 꿈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기회였다. 특수교사가 되겠다던 동기, 특수교사로서의 이념, 앞으로의 다짐 등을 정리해보면서 내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이렇게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나에 대해, 내 꿈에 대해 적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특수교사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특수교육과에 왔고, 앞으로 특수교사가 되어야지. 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지난 내 생각들과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앞으로를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친구들의 글을 보면서 비록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이렇게 깊은 생각을 갖고 사는 구나’ 도 느꼈다. 왠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비록 과제를 하기 위해 짧게나마 나를 돌아보고 내 꿈을 정리해 보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또 공부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나, 나중에 특수교사가 되어서라도 지치고 힘들 때마다 오늘 이글을 보며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정말 뜻 깊고 의의 있는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