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

 1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1
 2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2
 3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3
 4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4
 5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5
 6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인문어학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러시아의 학문과 문학
- 러시아의 학문적 발전과 대학
- 러시아 문학
I. 러시아의 학문
1. 러시아의 과학
18세기부터 1917년까지의 러시아 과학발전
구소련에 현대과학과 기술의 기초가 놓인 것은 표트르 대제 때의 일이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강력한 국가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으나, 당시 그의 생각은 교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표트르 대제는 과학지식을 넓히기 위한 거점으로서 여러 기관들을 설립했다. 1701년 수학과 항해학교가 세워졌는데, 보병부대를 훈련시키고 장교들을 재교육시키며 군 의료인력을 키우는 것을 주된 업무로 삼았던 이 이관은 1715년부터 해군아카데미로 개칭되었다. 그 후 1714년에는 공공도서관, 1719년에는 박물관이 잇달아 세워졌으며, 마침내 1725년에는 과학아카데미가 창설되었다.
D.I.멘델레예프(Dmitrii Ivanovich Mendeleev, 1834-1907)의 생애와 작업은 이 시기의 러시아 과학정신의 업적들, 목적들과 좌절들을 상징한다. 그가 만들어 낸 원소주기율법칙은 알려진 원소들을 분류하는데 질서를 도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의 속성까지도 예측하는 성과를 낳았다. 멘델레예프는 정부의 공식적인 의견과 자주 충돌한 탓인지 한 번도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발된 적이 없었다. 그는 교육부에 학생들의 청원서를 제출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의장직을 사임했다. 그 후 그는 줄곧 과학과 기술이 러시아의 경제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주로 석탄, 기름과 광석들을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일에 몰두했다.
진화개념은 생리학자인 I. M. 세체노프(1829-1905)의 작업에 기초를 이루었다. 그는 반사개념을 개발하여 뇌의 활동에 적용시킴으로써 정신과 육체관계의 문제에 접근했다. 의식이 과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견해는 I. P,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lov, 1849-1936)에 의해 더욱 진전되었다. 그는 소화의 생리학에 관한 자신의 실험적인 작업을 뇌생리학으로 확장시키고, 조건반사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1904년 노벨상을 받았다.
구소련의 과학
구소련 정부는 즉각 러시아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레닌은 과학아카데미에게 천연자원을 연구하는 일에 책임을 지고 산업과 경제의 재조직화를 위한 계획을 세울 위원회를 설치하가고 지시했다. 과학에 대한 구소련 정부의 노력의 결과, 특정한 과학적 발견은 예견할 수 없지만 과학연구의 영역은 규정될 수 있으며, 연구의 사회적 중요성에 비추어 재정을 할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구소련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서유럽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과학의 계획화가 이런저런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 영향을 받은 과학의 사회적 기능과 조건에 대한 믿음 때에, 1930년대 구소련에는 과학이 사회주의 사회전체에 스며들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탈린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당의 억압적인 정치체제는 구소련의 과학에 심각한 치명타를 입혔다. 외국여행의 제한으로 장기간 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과학정책
소비에트 정권이 출발할 때부터 과학의 발전이 최우선시되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끝나자마자 닥친 내전이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과학자들을 보유하고 국가의 산업발전을 지탱할 수 있는 연구소들을 만들어 연구조직망을 확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실용적인 연구개발(R&D)보다 순수과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1970년대부터는 근본적인 연구성과들을 실제로 적용하는 작업을 가속화하는 데 더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카데믹한 연구소들과 산업을 연계시키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었으며, 아카데미 체제 안이나 아카데미 산하 연구소 주변에 연구개발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소연방 과확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와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가 이러한 발전의 최전선에 있었다. 아카데미 체제는 과학분야에서의 힘을 강력하게 집중시키고 있다는 상징으로서, 구소련 시대에서뿐만 아니라 지금도 상당한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과학기술 국가위원회는 당과 정부의 지시에 따라 통합된 국가적 과학정책을 보장하는 기구로서 군사적인 연구개발만 담당하지 않는다. 1965년 창립된 과학기술 국가위원회의 기능분과는 계획, 재정, 과학기술정보, 다른 기구들과의 외적인 관계들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부문 분과는 경제의 특정부문이나 산업부문들에 따라 조직된다. 이 밖에도 부문들 간에 이루어지는 과학기술문제를 다루는 과학위원회들이 있다. 지도적인 과학자들과 산업대표자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특정분야와 미래의 계획작업에서 연구 상태를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R&D 주요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복잡한 프로그램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감독한다. 1976-1980년의 계획기간 동안에 200개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R&D 총지출액의 1/4에 맞먹는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II. 러시아의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