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착취와 영국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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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적 착취와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성적 착취와 영국 제국주의-
목차
Ⅰ. 머리말
Ⅱ. 성적 환상의 역사성
Ⅲ. 강압적 관계
Ⅳ. 성적 태도의 변화와 그 원인
Ⅴ. 맺음말
Ⅰ. 머리말
제국주의는 서구의 비(非)서구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정복뿐만 아니라 성적 착취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로널드 하이엄은(Ronald Hyam) “유럽의 팽창이란 기독교와 교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교접과 축첩의 문제이기도 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성적교접으로 생긴 결과는 서구 사회 내부의 섹슈얼리티(sexuality) 사전적 의미로 두 귀 사이에 있는 기관, 즉 대뇌에 관계되는 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전 생애와 전 인격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인간관계학에 포함되는 성과 성 행위에 연관된 모든 것을 총칭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한 자연적인 욕구와 함께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성 행동에 있어 사회적인 강제로 작동하는 시대적인 패러다임을 이야기한다. 정태섭 외 공著(2002) 『성의 역사와 문화』동국대학교 출판부 p32
를 재정립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이상적인 여성상인 ‘집안의 천사’이미지는 범유럽적으로 전파되었으며, 19세기 인도 항쟁을 계기로 식민지의 항거에 보호해야 하는 상징적인 구심점으로 부각되었다. 영국여성의 순결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아 마땅한 것이었지만 식민지인들의 성(性)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
유럽인은 유색인종을 동물에 가깝게 폄하하고도 식민지의 여성과 주저 없이 성적 관계를 맺었다. 유럽남성들이 낯선 인종의 여성과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서 유럽사회 전체를 관통하던 비유럽에 대한 성적 환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보겠다. 나아가 유럽인과 비유럽인의 성 접촉이 지배-피지배 구도 속에서 강압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밝히고, 19세기 중엽 이후 영국이 엄격한 금욕주의로 전환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겠다.
Ⅱ. 성적 환상의 역사성
유럽인은 다른 문명권을 성적 쾌락의 장(場)으로 이해하는 오랜 문화적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낯선 인종과의 성 접촉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오히려 성적 접촉의 기회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초기 제국주의 팽창 과정에서 광범위한 성적 접촉이 나타났다.
고대부터 서구 사회가 바깥 세상에 대해 품었던 이미지는 공포로 가득 찬 곳이자 성적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기독교의 전파로 이분법적 세계관이 도입되었을 때 이교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섹슈얼리티였으며, 이슬람 문명권의 넘쳐나는 성적 에너지는 종종 기독교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라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 말까지 서구 사회에서 동양(the Orient)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가장 지속적이고도 강렬한 이미지는 하렘(harem) 하렘은 보통 궁궐 내의 후궁이나 가정의 내실을 가리킨다. 하렘은 금단의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 하람(haram)에서 기원했다. 사전적 의미는 ‘경배를 드리는 곳’ 혹은 ‘신성한 장소‘를 말한다. 즉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거나 통제 하에 있는 곳 또는 그 내부에 특정인이나 특정한 행동이 금지되어 있는 장소라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 하렘은 가까운 친척 이외의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단지 궁전 후궁들의 처소뿐만 아니라, 무슬림 여성들이 기거하는 독립적인 장소 모두가 하렘인 것이다. 대저택이나 별장 그리고 궁전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졌는데 남성들만의 구역은 비룬(birun) 여성들만의 구역이 하렘이었다.
이었다. 그리고 하렘과 연결되는 동양의 주도적인 이미지는 전제군주의 노예나 첩으로서의 여성들이었다.
하렘은 권위주의적인 전제군주 남성과 그에게 독점된 성적으로 유혹적인 여성들이 거주하는 ‘금지된 공간’으로써 유럽인들의 상상력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벌거벗은 미녀로 상징되는 하렘은 노예화시킨 여성들과 성적인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해되어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켰다. 노예 소녀와 하렘, 동양의 축첩(蓄妾)이라는 관행은 제국주의 시대를 통틀어 지속된 일종의 집단 환상이었다. 하렘은 여성이 많은 곳, 남자가 없다는 절박함에서 오히려 남근 숭배의 장소가 되는 곳이자 다양한 성적 기술을 연마한 일종의 섹스 학교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서양 남성들 사이에 그곳을 동경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것은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렘에 대한 유럽 남성의 환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19세기 프랑스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그들은 오리엔트라는 명목 하에 성적으로 유혹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체의 여성을 그렸는데, 하렘의 실상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자신들의 상상력에 의지한 흥미위주의 회화를 많이 그렸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이국적인 주제와 지리적인 거리감을 이용하여 그들의 누드화에 이용하였을 뿐 진실한 민속적인 하렘 이미지는 그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