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갑오개혁과 청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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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학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갑오개혁과 청일전쟁
- 목 차 -
Ⅰ. 서론
Ⅱ. 갑오개혁에 대한 쟁점들
Ⅲ. 개혁 주체세력들의 성격
Ⅳ. 시기별 개혁의 내용과 분석
Ⅴ. 갑오개혁과 청일전쟁
Ⅵ. 결론
Ⅰ. 서론
갑오개혁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김홍집내각이 성립된 이후 1896년 2월 11일 고종의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 개화파관료들이 당면과제인 대외적 자주독립과 대내적 근대화를 실현하려 했던 개혁운동이었다. 비록 갑오개혁은 외세의 의해 개혁의 계기가 마련되고 그 추진과정에서도 외압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지만, 한국근대 역사상 근대화의 기점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으로서 갑신정변과 독립협회를 이어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갑오개혁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1894년이라는 시기의 중요성 때문이다. 1894년은 동학농민전쟁을 비롯한 청일전쟁과 같은 대내외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들은 갑오개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갑오개혁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타율자율성 문제, 용어 사용에 대한 정리, 개혁주체세력의 성격, 개혁시기별 분석, 역사적 의의와 한계 등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밝혀졌다. 갑오개혁에 대하여 참고한 연구성과는 유영익, 『갑오경장연구』, 일조각, 1990; 주진오, 「갑오개혁의 새로운 이해」, 역사비평 1994년 가을호, 1994; 주진오, 「한국근대 국민국가 수립과정에서 왕권의 역할:1880~1894」2003, 역사와 현실50; 왕현종,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 역사비평사, 2003 등 참조.
그러나 아직까지 갑오개혁을 둘러싼 여러 연구 성과들은 성격과 시각의 차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차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차는 갑오개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일본과 러시아의 대한 정책, 6차례의 내각변동, 민비시해사건 등 국내외의 상황변화에 따라 정치적사상적인 입장이 달리한 데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갑오개혁 이전 시기 그들의 사상과 정치활동에 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여 ①갑오개혁에 대한 쟁점들 ②개혁 주체세력들의 성격 ③시기별 개혁의 내용과 분석 ④갑오개혁과 청일전쟁과 같이 크게 4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Ⅱ. 갑오개혁에 대한 쟁점들
1. 용어사용에 대한 정리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갑오개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갑오경장이라는 용어를 견지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는 1894년 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말 청일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출범한 새로운 개혁정부가 조선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수행했다는 의미에서 당시에 ‘대경장’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를 빌려와 일반적으로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경장’이라는 말은 기존의 조선 체제 내에서 제도와 문물이 해이해져서 현실과 어그러질 때 이를 고쳐서 바로 잡는 것으로, 사회적정치적으로 부패한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경장의 의미는 전통적인 제도의 개혁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갑오개혁은 전통적인 봉건국가의 틀 내에서 운영상의 모순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국가를 근대국가 체제로 전환시켜나가려는 것이므로 ‘근대개혁’이라는 개념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 ‘갑오개혁’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갑오개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적절한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갑오개혁은 시기적으로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이루어진 개혁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러한 넓은 범위의 개혁을 60년마다 돌아오는 간지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주진오, 1994, 앞의 책, p.18.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주진오는 1894년 농민전쟁이라고 하듯이 ‘1894~1896년 개혁’으로 부를 수도 있다고 언급하지만 어색한 느낌을 가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