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 5학년 - 7 서로 다른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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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리주의 - 5학년 - 7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리주의
1.이론개관
⑴시대적 배경
1780년대부터 진행하는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해서 영국의 산업자본은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통해 영국의 지주과두제적 정치체제를 경제학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정치 이론이 필요하게 된 이유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이론의 지향성은 앙시앙 레짐과 결정적으로 대립해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했던 프랑스 시민계급의 지향성과는 동일한 것일 수 없었다. 혁명적 난동으로 귀결하는 이론은 회피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과두제적 정치체제는 변혁되어야 하나 과거의 그것과 단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이론은 벤담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 급진파에 의해 구성되었다. 공리주의는 영국 정치체제의 개혁론으로 전개된다.
18세기 말경부터 영국의 산업국가화가 진행되었고 경제적 변동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산업적 중간계급이 정치적 역할도 담당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정치체제에 미치는 영향적요소로서 경제적인 것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의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업적 시민의 요구는 영국의 지주계급과는 이해가 대립되는 것이었다. 영국의 정치는 대의제적인 것이었으나 정치권력은 지주가 독점하고 있었다.
새로 등장하는 산업적 시민은 전투적이었다. 경제적 토대를 견고히 하고 있던 시민층은 그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정치권력의 주체가 되는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걸 맞는 정치이론을 갖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로크의 자연권이론은 외형상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같았으나 실제로는 혁명의 이론이었고 프랑스 혁명의 귀추가 시민들로 하여금 로크 이론을 불신케 하였다. 또한 로크의 정치이론은 실증될 수 없는 것이었고 설득력도 없는 것이었다. 자연권론은 하나의 가설로서 선험적 요청에 불과하다는 데 실천적 매력도 없었다. 시민계급은 단순 관념론이 아니라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의회주의의 개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실천적 혁명이론을 필요로 했다.
또한 19세기초에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작업 환경과 생활 조건 속에서 일했다. 하루 노동 시간은 대체로 10시간이나 14시간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받기 힘들었다. 많은 아동과 부녀자는 가죽 채찍과 벌금, 질병과 해고 협박으로 시달리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끼니를 해결해야만 할 ‘공장의 힘없는 노예’일 뿐이었다. 성인도 노동자의 단결을 금지하고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으로 탄압받았다. 그 결과로 과격한 기계 파괴의 러다이트 운동을 시작으로 정치 투쟁과 대중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여러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시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는 공리주의가 등장했다.
(2)공리주의
공리주의란 공리(utility)에 기초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려는 윤리설이다. 공리주의 창시자는 잘 알려진데로 벤담이다. 벤담에 의하면 공리란 “어떤 행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경향에 따라 그 행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관계 당사자에게 편의, 이익, 쾌락, 복지, 행복을 발생시키거나 손실, 고통, 재난, 불행을 제거하는 사물의 본성이 곧 공리(功利)인 것이다.
“자연은 인류를 쾌락과 고통이란 두 군주의 지배 아래 두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지시하는 것도 오로지 이 두 군주에게 달려 있다. 한편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과 다른 한편으로 원인과 결과의 고리는 그들의 왕좌에 매여 있다.” 라는 벤담의 말에 따르면 쾌락을 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증명이 필요없는 제1원리이다. 이 제 1원리에 따라 행위 당사자에게 쾌락을 증진시키는 것은 선이요, 고통을 증진시키는 것은 악이란 결론이 도출된다. 여기서 볼 때 공리주의는 근본적으로 쾌락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쾌락주의란 쾌락을 행동의 동기와 목적으로 삼거나 쾌락을 최고선으로 삼으면서 도덕법칙을 쾌락 추구의 방법으로 삼는 학설을 말한다.
공리주의는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자유방임주의, 이를 통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났다.
공리주의는 결과론적 성격을 띠는 이론으로서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동기가 어떠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불러오는 결과가 행복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