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버크 리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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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엘리너 버크 리콕
리콕은 미국 인류학의 주도적인 마르크주의 페미니스트였으며 그 분야에 대한 그녀의 기여는 폭넓고 심오하다. 리콕은 급진주의자였고 인간사외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주창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리콕 저작의 주안점은 여성의 종속이 타고난 성별차이의 반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소산이라는 주장이며 이 주장의 평생 그녀의 핵심적 논제로 남아있다. 리콕의 업적은 근원적이다. 그년는 민족지적 현실, 특히 여성지위의 역사적 변형을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접근법을 명시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미국 인류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공로는 미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였다.
배경
엘리너 버크는 1922년 문학을 통해 급진적인 정치 이념을 표현 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론가이자 작가였고 어머니는 수학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주기적으로 뉴저지 북부의 시골 농장에서 그리니치 마을로 옮겨 다니는 이동생활을 하였다. 버크는 래드클리프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였고 진화론적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의 저서와 마야 전문가 토저의 여성 혐오론은 접하게 된다. 그리고 리콕은 뉴욕에 돌아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는데 웰트피시와 스트롱의 영향을 받았다. 웰트피시는 인류학적 조사의 정치적 파급효과에 대해 강의 했고 스트롱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활동한 고고학자이며 일류학자였는데 1972~1928년 동안 래브라도에서 민족지 조사를 수행하였고 래브라도 반도의 몽타네-나스카피 족의 사회적. 경제적 조직에 대한 인류학 논쟁에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었다.
재산, 식민주의, 몽타녜-나스카피족
1915년 인류학자 스펙은 래브라도 몽타네-나스카피 군단이 영토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본래 수렵채집인 사이에 사유재산권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이는 접촉 이전부터 존재한 원주민들의 경제 제도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유가 아닌 공유재산권이 수렵채집 사회의 본질이라는 모건, 마르크스, 엥겔스의 지론에 맞서는 것이었다.
리콕은 스트롱의 래브라도에 대한 미간행 자료에 자극받아 래브라도에 대한 초기 예수회 교도들의 기록을 연구하고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다른 역사적 근거들을 조사하였다. 이 조사에 드러난 기본 요지는 몽타네-나스카피의 사회생활이 모피 무역으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재편되었다는 점이다.
1950년에 리콕은 래브라도로가서 몽타녜-나스카피족의 민족지적 조사를 수행하였다. 족보를 수집하고 수렵 영토를 지도로 작성함으로써, 수렵 경제의 역사적 변형과 몽타녜-나스카피의 재산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또 민족사적. 민족지적 근거를 종합하여 몽타녜-나스카피족과 그들이 경험한 역사적 변화에 대한 지식을 심화 시켰다. 개인의 재산권은 스펙이 주장하는 것처럼 원주민의 경제 제도가 아니라 모피교역이 촉발시킨 재산관계의 변화에서 나온 것 이었다. 스펙은 모피무역이 비교적 근래에 일어나 그 영향은 단기적이므로 완전히 새로운 재산관계를 창출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리콕은 간접무역이 1500년대 초기에 시작되었고 1600년대 초기에 이르면 상당히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입증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18세기 이전 수렵군단은 넓은 영토를 자유롭게 누비고 다닌 유동적인 사회집단이었다.
2. 사유재산권은 18세이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