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정지용의 삶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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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정지용의 삶과 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정지용의 삶과 시 -
목 차
Ⅰ. 서론 1
Ⅱ. 정지용의 생애 1
1. 성장 및 가족관계
2. 휘문고보와《요람》동인시절
3. 일본 동지사대학 시절
4. 휘문고보 교사와 문단활동시절
5. 해방 이후의 행적
Ⅲ. 정지용 시의 변모양상
1. 초기시 - 동시 및 고향 상실 의식과 바다의 상징성 3
(1) 동시 및 민요풍의 시와 고향 상실 의식
(2) 바다의 상징성
2. 중기시 - 신앙시와 종교적 극복의 한계 8
3. 후기시 - 산으로 본 동양정신의 세계 9
(1) 동양정신의 세계와 민족적 상징성
(2) 자연과의 합일의식
Ⅳ. 정지용의 문학사적 의의 12
Ⅴ. 결론 13
Ⅰ. 서론
정지용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주로 활동했던 시인으로, 한국의 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월북 문인으로 취급되어 1988년에 와서야 그의 아들의 노력으로 해금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된다. 그리고 현재 정지용은 우리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명으로 언급되며 그의 시는 학교 교과서에 여러 편 등장하고 노래로 시가 불리기까지 하며 널리 일반에게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는 그의 생가를 비롯해 ‘정지용 문학관’이 설립되어 그곳에서 우리는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매년 5월에는 정지용을 추모하고 그의 시문학 정신을 이어가며 더욱 발전시키자는 뜻에서 ‘지용제’가 열리기도 한다. 이 외에도 매년 ‘지용문학상’, ‘전국지용백일장’ 등의 행사가 열리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천재적 시인이었던 정지용을 기억한다.
정지용은 초기의 모더니스트로 국한되지 않고 우리 시의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끊임없이 변모해간 시인으로,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 계열의 시, 카톨릭 신앙시, 동양정신의 전통지향시 등 넓은 영역의 시를 창작하였다.
본고에서는 정지용의 시의 변모양상에 따라 동시 및 고향 상실 의식과 바다의 모습이 나타났던 초기시(1926~1932), 카톨릭 신앙이 표출된 중기시(1933~1935), 시집 『백록담』을 중심으로 산수시가 나타는 후기시(1936~1950)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Ⅱ. 정지용의 생애
1. 성장 및 가족관계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에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4대 독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태몽에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아명으로 池龍(지용)이라 불렸고 나중에 그 음을 따서 芝溶(지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4대 독자라는 그의 집안에서의 위치는 무척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는 형제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누이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이는 그의 시 의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라는 구절에서도 그의 누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지용은 1910년 9세 때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913년 12세에 송재숙과 결혼한다. 그들에게는 10명이 넘는 자녀가 태어났는데, 모두 태어나면서 죽거나 어렸을 적 죽고, 4명의 자녀만이 남게 된다. 그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자녀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애끓는 심정의 표현으로 보인다.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정지용의 시로는 , , , , 등이 있다.
그는 자식들의 죽음을 겪고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는다. 시인의 불행에 의해 시적 정서와 상상력이 더 풍부해져 시를 많이 짓는 경우도 있으나, 지용의 경우 사랑하는 자녀들의 잇따른 죽음 앞에서 창작 의욕을 상실했을 것으로 보인다.
2. 휘문고보와 《요람》동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