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이념과 민족 이태준의 해방 전후 먼지 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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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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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이념과 민족
-이태준의「해방 전후」·「먼지」를 중심으로-
▶ 차 례 ◀
Ⅰ. 작가 이태준과 해방 전후 상황
1. 작가 이태준
2. 해방 전후 이념의 대립
Ⅱ. 작품 분석
1. 「해방 전후」
2. 「먼지」
Ⅲ. 해방 후 국가 건설과 문학의 관계
1. 해방의 의미
2. 무엇이 민족문학이냐?
3. 근대 국가 만들기와 문학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이념과 민족
-이태준의「해방 전후」·「먼지」를 중심으로-
Ⅰ. 작가 이태준과 해방 전후 상황
이태준의 「해방 전후」는 1946년 8월 《문학》1호에, 「먼지」는 1950년 3월 《문학예술》에 발표되었다. 두 작품은 약 4년의 시간차로 해방 전과 후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발표에서는 해방을 전후하여 작가 이태준을 알아보고, 그의 작품 「해방 전후」와 「먼지」를 분석해보도록 한다. 또 국가 건설을 위한 이념의 문제와 그 저변에 깔린 민족의식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작가 이태준
1) 해방 전 순수문학 경향
1933년 김기림(金起林), 이효석(李孝石), 이종명(李鍾鳴), 김유영(金幽影), 유치진(柳致眞), 조용만(趙容萬), 이태준(李泰俊), 정지용(鄭芝溶), 이무영(李無影) 등과 9인회(九人會) 1930년대 경향문학이 쇠퇴하고 문단의 주류가 된 이들은 계급주의 및 공리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여 당시 순수문학의 가장 유력한 단체로 활동하였으나 3~4년 만에 해체하였다.
를 조직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에 전념하여, 일제 말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문장(文章)》지를 주관하다가 8·15광복 직전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 하였다. 특히 해방 전, 그의 작품 경향은 현실 탐구나 사상적인 내용보다는 문장의 묘미를 강조하는 등 순수 예술을 지향하였다. 또, 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마련,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풍취(風趣)를 담는 작품을 주로 그리고 있다.
2) 소련 방문과 북에서의 체류
이태준은 비밀을 가지고 북으로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문학동맹의 동맹원들에게까지 거짓으로 말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소련의 문화사절로 가는 것은 이미 모종의 연락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쏘베트는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부러웠습니다. 그전 문학에서 보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라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받느니라 아무리 외치어도 잃어버리기만 하던 인간성의 최고의 것이 유물론의 사회에서 소생되어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리까! 제도의 개혁이 없이는 백천번 외어대야 미사려구에 불과함으로 예술이 인간에 보다 크게 기여하려면 인간을 바르게 못살게 하는 제도개혁에부터 받쳐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태준, ‘예술통신’에 실린 ‘서울문학동맹 벗님들에게’ 中
‘서울문학동맹 벗님들에게’를 보면 이태준은 소련을 방문한 후 다시 남으로 내려올 생각이었으나, 귀국 후 10월 인민항쟁이 일어나서 다시 남으로 내려가는 것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북에 계속 체류한 것으로 짐작된다.
3) 조선문학가동맹과 북조선 문예총 사이에서 이태준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