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의 이해(그들에게 제주도는-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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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사회의 이해(그들에게 제주도는-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들에게 제주도는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일제 강점기 역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 까지 수도 없이 많이 배웠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고 그 것이 1945년 8월 15일에 끝이 났다는 내용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 일본군이 왔을까?, 와서 어떤 일들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부끄럽게도 솔직히 해본 적이 없다. 2학년때 교양과목으로 한국사의 재조명이란 과목을 수강했을 때 알뜨르 비행장에 관련된 영상을 본 것이 전부이다.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특별히 제주도와 연관 지어 쓴 이 책은 역사책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함이 앞섰고 평화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도에서 일본군들이 과연 어떤 잔혹한 일들을 벌였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결7호작전은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이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준비한 작전으로 제주도에서 준비된 작전을 말한다. 여기서 제주도는 상하이와 난징등을 폭격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요충지였으며 지정학적으로 제주도를 미군에게 점령당하면 일본은 물자공급과 관동군 차단, 일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키나와가 미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이르는 등의 정세 변화에 따라 일본은 미군이 월등한 항공력을 바탕으로 제주도나 한반도 남부 지방에 상륙할 것이라 판단, 한반도 남부 해안과 제주도에 집중적으로 병력을 보강하였다. 그리하여 제주도에는 기동 병단인 제121사단을 추가로 배치하고 또한 주된 상륙 지점은 큐슈 남부, 또는 큐슈 북부일 것이며, 큐슈 북부에 상륙할 경우 기지 설정을 위한 제주도 공략이 필연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서의 결전 준비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어 기동 병단인 제120사단의 제주도 배치가 결정되었다.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은 미쳐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항상 일제강점기에 대해 배울 때마다 나는 태평양전쟁에서 그들의 광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 다분한 광기를 가지고 일제는 전쟁말기에 연합군의 일본 본토 상륙저지를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제주도를 선택한 것이다. 결7호작전만 보아도 그렇다. 당시 22만명이 거주하고 있던 제주도에 일본육군 121사단사령부, 58군사령부, 108여단사령부와 7만 여명의 일본군을 주둔하게 하였고 그밖에 비행장, 포대, 대피소, 진지동굴, 격납고 등 총 6700여개 군사시설까지 구축시켰다.
그리고 일본이 패망한 년도인 1945년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만행은 더욱 심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군사진지나 갱도, 알뜨르 비행장과 정뜨르 비행장, 진드르 비행장등을 만들며 제주도내 노무동원자들을 강제동원 시켰다. 1940년대 이전에는 원래 사람 수에 맞추어 노무동원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패망직전인 1944년부터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동원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14살부터 5-60살 심지어는 70대까지도 노무동원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환경과 현장감독들의 잦은 구타로 인한 부상과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44년도부터는 조선에서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제주지역의 징병자들은 총도 잡아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군대규율을 지키는 노무동원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욕심이 일으킨 광기는 제주도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제주도민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어린아이와 노인은 일을 시키지 않는다. 노무동원자들의 나이만 보아도 일본군들의 나쁜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책에서 그 당시 일본군이었던 일본인이 한국에 오자마자 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사죄한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진정한 사과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죄들이 용서가 될 것이다.
1940년대부터 일본이 전쟁을 확대함에 따라 식량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농산물 착취방법으로 공출제도가 등장했다. 공출량이 부족하면 폭력이 이어졌고 젊은 사람들을 징용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제주도민들은 점점 살기 어려워졌으며 전쟁이 삶이 되어버렸다. 제주도민들의 인적, 물적자원이 총력전기에 총동원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