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정곡(작품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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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가정곡(작품 내용)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작품의 내용
내 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내 임(의종)을 그리워하여 울며 지내더니
山(산)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산 접동새(소쩍새)와 나는 비슷합니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아니시며(옳지 않으며) 거짓인 줄
殘月曉星(잔월효성)이 아시이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아실 것입니다.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 넋이라도 임을 한데 모시고 싶어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우기시던 이 뉘십니까?(우기던 사람, 곧 나를 귀
양 보내게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過(과)도 허믈도 千萬(천만) 업소이다.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힛마리신뎌 뭇 사람들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말)이도다.
읏븐뎌 아으 슬프구나.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 임이 나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그러지) 마십시오, 임이시여 (마음을) 돌려 (내
말을)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2. 작품의 주제
연군의 정, 충절
3. 작품의 기존연구
은 여요 중 유일하게 작가와 연대가 소상하게 명시된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조선조부터 현재까지 ‘충신연군지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작가라고 알려진 ‘정서’에 대해 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연구가 주축을 이뤄왔다. 정무룡, 「정과정 연구」, (신지서원, 1996), pp.233.
작자 정서는 호가 과정(瓜亭)으로 인종의 총애를 받은 외척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의종이 즉위하자 권신들의 의견대립으로 인한 조의(朝議)에 몰리어 고향 동래로 돌아가 다시 부름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임금이 다시 불러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서는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한편, 임금이 다시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노래를 지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그가 조정을 물러나 동래에 은거한 뒤인 의종 24년(1170) 9월부터 정중부 난으로 의종이 추방되고 왕제 익양공(명종)이 옹립되어 다시 부름을 받기까지의 사이에 지은 것이니,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의종 10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 후 이 노래는 충신연군지사로 널리 알려져 익재 소악부에 한시로 번역되었고, 궁정에서는 이를 전악(典樂)으로 보전하여 공기(工妓)는 물론 사대부 사이에서도 모두 학습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이 노래가 의 기록처럼 ‘너무 슬픈 가사로’ 연군의 정을 노래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갱각되며, 송강의 이나 등의 연군지사도 이 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병채, 「새로고친 고려가요의 어석 연구」, (국학자료원, 1994), p171.
정과정은 10구체 사뇌시형과 민요를 수용한 바탕 위에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려 국어가요는 그 형성과정을 검토해 볼 때 민간에서 불리던 민요를 바탕삼아 창작한 흔적을 여러 군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과정 역시 노래말과 악곡의 양면에 걸쳐서 민요를 수용하고 선대 시형인 사뇌가의 10구체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민중들에게 널리 확산되었을 것이다. 최철 박재민, 「석주 고려가요」, (이회문화사, 2003), p.315.
은 향유층이 상층이고, 형식이 단련체로서 긴 10여행이고, 표현이 漢詩화 국문시가로 이원적이며, 형성과정에 있어서 민요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민요의 감탄구를 변용시킨 “아으”를 계승하여 사용한 점 등에 있어서는 10구체 향가를 계승하였지만, 行形式과 分草刑式 그리고 감탄구의 사용에 있어서 차이가 많다. 특히 서로 다른 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요소들 즉 行이나 分草刑式 등은 장르를 변별하는 주요한 것이다. 감탄구 역시 10구체 향가의 일반성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이다. 따라서 은 향가를 계승한 지속적인 면이 상당한 정도 인정되지마는 그것에 귀속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며, 새로운 고려 시대의 시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양태순, 「고려가요의 음악적 연구」, (이회문화사, 1997), p.297.
텍스트를 보면 시적 화자는 확연하게 여성 화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애상적인 어조, 님에게 보내는 간원,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하면서 찾아주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목소리 등이 모두 아니마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행에서 시적 화자는 애상적 목소리로 ‘내 님을 그리워해서 울고 있더니’라며 자신의 심정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그 다음 행에서는 ‘산 접동새와 자신은 비슷하다’는 언급이 이어진다. 주지하다시피 접동새는 고래로부터 비극적인 전설을 지니고 있는 새로서, 피를 토하며 밤새도록 서럽게 운다고 알려져 왔다. 시적 화자가 그러한 새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심정이 그렇듯이 애절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3행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행간에서는 시적 화자는 무엇인가 잘못돼서 님의 사랑을 잃게 되었지만 그것은 님이 오해한 것이고 자신은 아주 결백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는 점이 추출된다. 이러한 것을 알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시적 화자는 자신의 결백함은 ‘殘月曉星’도 알고 있으리라고 단안한다. 이러한 표현 안에는 자신이 죄가 없음을 하늘이 안다는 뜻도 있지만 밤을 지새면서 님을 그리워하고 갈망한다는 의미도 내포된다. 이러한 점들도 모두 시적 화자가 여성이라는 징표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사랑을 간구하는 것은 강한 남성보다는 연약한 여성의 특질로 알려져왔으며, 애원투의 가녀린 목소리도 여성의 특성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남성’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를 신하로, 님을 임금으로 치환시켜, 신하가 임금을 향해 부르는 노래인 충신연군지사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도 다른 여요처럼 작가가 명기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니마성을 지닌 목소리의 주인공인 시적 화자에게 어떤 해석이 내려졌을까? 추측컨대, 아마도 작가가 신하인 남자라는 것에 대한 정보가 없었더라면, 분명히 텍스트 내의 사건은 이성간에 야기될 수 있는 성격으로 간주되었을 것이고, 시적 화자가 자신은 잘못이 없고 결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이때의 잘못을 남녀간에 야기될 수 있는 ‘허물이나 잘못’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가도 남녀의 비정상적인 애정행위를 다룬 시가로 간주되었을 것이고 당연히 남여상열지사라는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무룡, 앞의 책, pp.235~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