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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미의 이름
영화의 배경은 플라톤에서 아리스토 텔레스로, 즉 절대적 이데아의 세계에서 유물론적이고 경험적인 사상으로 바뀌어 가는 중세이다. 이 상황에서 기존 성직자 편의 호르헤 신부와 교회 내부의 개혁을 바라는 윌리암 신부가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이분법적인 사항이 많이 보인다. 정통인가 이단인가를 집요히 따지며, 등을 채찍질하면서 금욕을 하느냐 쾌락을 추구하느냐, 권위를 내세우는가 웃을 수 있는가, 신앙을 중시하는가 이성을 중시하는가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목 뿐이고 사실은 경건한 수도원 내부에서는 이 두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수도원 안에는 게이들이 있고, 여자를 먹을 것으로 유혹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이분법적인 요소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있지 않은 양 수도원은 항상 고요하고 경건하게 지내도록 유지되어 있다.
이 이분법적인 대립 사이에 대표적으로 아리스트텔레스의 이 있다. 호르헤 신부는 ‘묻기 전에는 대답하면 안된다. 웃어서는 안된다. 품위를 떨어뜨려서는 안된다’와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는데 이것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서 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진다’라며 희극론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윌리엄 신부는 ‘이성에 반하는 불합리한 명제의 권위를 무화시키는 데 웃음은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웃음이란 사악한 것의 기를 꺾고 그 허위의 가면을 벗기는 데 요긴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호르헤 신부는 기존의 신앙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장서관을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 인간이 진실을 알아내면 알아낼 수록 교회의 권위는 떨어지고 신과 인간이 멀어질 거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윌리엄이 이성으로써 진실을 찾아내려고 하는 과정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다. 호르헤 신부는 그 책을 감추고, 윌리암 신부는 그 책을 찾으려 애쓴다. 호르헤 신부가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을 지키려고 여러 사람들을 죽게 하고, 자신도 책과 함께 죽어버린다. 현대는 모든 것을 연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중세에서는 이성으로 감히 신의 진리를 연구해도 되는 것인가를 논했을 것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기존의 것을 지켜내는 쪽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대립구조로 살인사건과 추리가 진행된다.
늙은 수도사가 된 아드소는 어린 시절 겪은 기이한 사건을 회고하며 마지막 구절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고 하며 글을 마친다. 아드소는 수도사가 되기 전에 불꽃같은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젊은 아드소는 그 사랑의 기쁨을 몸소 체험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성과 속의 이분법적인 사회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단심판자가 이단과 정통의 구분을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대로, 사회상대로, 교황의 뜻대로, 전통적으로 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것들도 지키지 못한 채 호르헤는 결국 자살하고 윌리암도 결국 이성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었던 이성의 힘으로써도 장서관의 소멸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에게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이름만 진리였을 뿐이라서 자기에 대한 강박관념과 그에 따른 죄의식과 상대방에 대한 배척과 거부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아드소에게 있어 장미는 지난날의 이름없는 사랑했던 여인이기도 하고, 그가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다. 당시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상대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을 ‘덧없는 이름들’이라고 은유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싸우게 되는 중간에 있던 은 무의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표면 밑에 숨어있었던 진정한 진실에 대한 고뇌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드소는 마지막에 절대적 진리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추구할 필요성이 정말 있는것일까라며 한탄하고 있다.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 시대를 이끌어왔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극단적인 나눔길에서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려왔다. 이 때 동양의 중용의 정신이 떠올랐다. 한 쪽 끝에서만 서서 그것을 목숨을 걸고 지키면서 상대방의 것을 배척하는 것보다 양쪽 의견을 다 듣고 적당히 타협하는 마음의 여유가 진정한 자유를 주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리는 하나다’라는 사상과 맞게 굳이 이 의견, 저 의견을 두고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
첫 장면에서 돈 꼴레오네는 손님과 무서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회의 질서나 국가의 법이라고 해봤자 나를 지켜주지도 않고 억울한 일이 생겨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함에 대해서 돈 꼴레오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런 대화의 바깥 풍경은 돈 꼴레오네의 막내딸의 성대한 결혼식이 한참 진행중이다. 아름다운 신부와 흥이 난 손님들,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진다. 그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의 이면에는 어두운 곳에서 여러 가지 음모가 난무하다. 돈 꼴레오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사내답게 굴지 못했던 남자가 밖에서는 인기 가수로 변모한다.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부이다. 내면의 일은 표면의 일과 매우 다르게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사회 권력은 가족과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주지 못함에 대부는 스스로 선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당위성을 만들어낸다. 대부는 돈이나 명예, 혹은 권력을 요구함으로써 이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우정을 충실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
미국내에서 마피아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대부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누가 그들의 이해관계에는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손해가 되는 그런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간섭해도 된다고 했습니까?’ 스스로 정의를 만들고 정의를 집행할 수 있는 이익이 들어난다.
이 철저한 사랑의 가족 중심주의는 필연적으로 가족 이기주의를 만들어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대부가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