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문 갇힌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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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갇힌 주관(主觀)
주관은 개인의 사고와 심리 속에 가지치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의 강력한 내적 결합이다. ‘주관’은 단어 그대로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주관은 개인의 겉 자아, 속 자아를 포함하여 그 사람 자체와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즉, 주관이라는 것 자체가 내면의 관점과 감정이 여러 가지 형태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관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속에 있는 견해 및 관점을 기초로 하는, 관념의 태도이다. 주관의 영역은 전체나 특정 범위부터 개인에게 내재된 은밀한 범위까지 광범위하다. 구한 말,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이 있다. 노베르트 베버, 조지 커즌, 새비지 랜도어,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 그들은 개인의 주관적인 잣대로 한국을 관찰했다. 나는 그들이 일종의 갇힌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이 한국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그녀 내면의 주관을 엿볼 수 있다. 비숍은 4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11개월간 답사했다. 그녀는 우리 민중의 삶과 조선 본연의 모습을 경험했다. 그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 그녀의 눈에 비친 서울은 너무 단조로웠다. 매일 똑같이 더러운 아이들, 똑같은 갈색 개들, 똑같은 짐꾼들. 그녀는 민중을 더러운 빈민가 귀퉁이에서 삶을 흘려보내버리는 활기 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녀의 지성과 주관은 조선과 조선인만의 고유함 그 내부의 깊은 곳까지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중의 풍경은 그녀에게 단조롭게 다가온 것이다. 그녀의 주관은 피상적인 것에 점철되었고, 우둔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관을 그런 부분에만 국한시켰다. 이것이 그녀의 갇힌 주관이다.
조지 커즌[George Nathaniel Curzon]과 새비지 랜도어[A.H Savage Landor]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들의 인식 속에 박혀있는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다. 커즌은 일본과 한국을 비교했다. 그는 일본이 근대화를 이룩한데 비해 한국은 여전히 관료 체제가 남아있고 군사체제도 약한 나라로 보았다. 새비지 랜도어는 조선을 가련하고 문명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로 기록했다. 그들의 눈으로 본 조선은 근대성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조선을 근대화 시켜 줄 나라가 필요해 보인 것이다. 나라와 문화는 저마다의 혼과 특색이 있다. 고유한 혼과 특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일성, 획일성으로 묶이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조선을 타자로만 여기는 편향된 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커즌은 국가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의 주관과 그 스스로를 ‘커즌라인’에 가뒀다.
같은 이방인이라도 그 위치, 직업에 따라 극명한 주관의 차이가 보인다. 커즌과 랜도어와는 달리 독일 신부 베버[Weber Norbert]는 전과는 사뭇 다른 주관으로 조선을 응시했다. 그의 시각은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일본 식민주의 앞에서 고유하고 사랑스러운 한국 문화가 꺼져가는 것을 진실로 염려하던, 오롯한 그만의 주관이다. 그는 종전과 달리 보다 열린 주관을 내비쳤다. 그의 주관에는 포용성을 바탕으로 조선 문화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다. 이처럼 개인의 사고회로에 있는 수많은 잣대들이 주관의 근거가 되고, 주관의 차이로 나타난다.
갇힌 주관은 견고해서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타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비숍과 커즌의 짙은 주관과 일본의 갇힌 주관들에 의한 조선의 모습은 처참하다. 그 처참한 잔상이 현재까지 우리의 주관을 짓누르고 있다. 우리의 주관은 무뎌졌다. 주관이 모순된 바는 개인의 주관이 철저히 자신의 것임에도 그 원인과 영향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주관의 무지이다. 한 번 굳게 뿌리 내린 주관, 오래된 주관은 미미한 자극과 인상으로는 조각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관은 무섭다. 개인의 주관은 남을 강제할 객관적 당위성도, 명확한 기준도, 그 어떤 기준도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주관을 나의 갇힌 주관으로 역으로 가둘 권리도 없다. 개인의 갇힌 주관은 자신의 내면세계 속에서 갇혀있는 개체로서만 존재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