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포왕 감상문
분야
hwp2011년 개봉한 영화 , 라인업부터 화려하다. 박중훈, 이선균, 이성민, 김정태, 이한위 등의 내공있는 명품 배우들부터 어려웠을 감정신을 잘 소화해낸 아역배우까지.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시끌벅적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배우들, 특히 든든하게 영화를 장악해주는 조연 배우들을 보며 자연스레 ‘와- 이 영화 흥미진진하겠다. 믿고 볼만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날 발견했다. 특히 명품 조연이란 표현이 어느덧 익숙해진 요즘같은 세상에 영화에 내공있는 조연 배우의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금 느꼈다. 그렇게 듬직한 마음으로 영화를 반 정도 보고나서야 몇 년 전 이미 한 번 봤던 영화라는 걸.깨달았다. 그럼에도 다시 보아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참 유쾌했다. 유치한 듯하면서도 영리한 말장난으로 장면을 띄우기도 했고, 빠른 화면 전개와 화면 분할 같이 다양한 장면연출로 긴장감과 대립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후반부로 가면서 박중훈의 캐릭터가 진정성을 가지게 되면서 영화 속 사건의 소재로 등장하는 성폭행 사건에 무게감이 실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영화는 내내 유쾌했다.
나는 아직 영화를 분석하며 깊게 볼 줄 모른다. 그저 재밌으면 재밌고, 허전하다면 허전하다고만 생각하던 평범한 관객이었다. 영화 속에 담긴 의미는 느껴지는 대로 느꼈고, 느껴지지 않으면 흘려보내곤 했다. 그러다 영화에 담긴 의미와 장면의 의미, 의도, 구성 등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깊이는 아직 얕을지 모르지만 이전에 처음 을 봤을 때와는 달리 보다 영화 속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고, 확실히 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을 떠나서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이 개인적으로 주연배우의 캐릭터 설정에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내가 상상한 모습으로는 분명히 영화 전후반 캐릭터가 말하는 대사의 느낌과 행동이 대조적인데, 이상하게 박중훈은 전후반의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시나리오의 대사와 구성과 영화에 표현된 디테일에는 다른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배우의 애드립도 그렇고, 글로 표현된 장면이 영상으로 연출되었을 때 보태지는 긴박감도 있었다. 시나리오와 달리 영상에서 표현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영화 전후반의 황재성의 모습은 성격이 변화한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냥 앞 부분은 감정없는 액션신, 뒷부분은 감정이 스며든 액션신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개인적인 자격지심을 이겨내고 진정성을 가지게 된 그리고 다시 유쾌해진 황재성의 캐릭터로는 보이질 않고, 그냥 ‘경찰을 연기하는, 내공으로만 이끌어가고 있는 박중훈’으로 보였다. 속물 또는 악바리같은, 더 거친 이미지를 풍겼어도 괜찮았을 캐릭터로 보였는데 웬일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박중훈이 표현해낸 황재성은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았다. 이선균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깔끔한 이미지를 가진 황재성이기에, 속물이나 악바리를 강조하는 것이 별로였다면 차라리 더 칼같고 날카로운 모습을 강조 해주기만 했어도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찬은 분명히 눈에 띄게 찌질했고, 그만큼 몸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황재성은 정의찬에 비해 특별하게 똑부러져 보이지도 않았고 보다 냉철해보이지도 않았다. 자기 옷은 입었지만 마치 옷을 뒤집어 입은 것처럼 그저 ‘황재성을 연기하는’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존재감만 있었던 것 같다. 워낙에 네임밸류가 큰 배우이고, 연기를 잘한다는 것 또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특히 아쉬웠던 장면의 예를 하나 들고 가자면, 황재성과 정의찬이 술집에서 제대로 처음 맞붙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는 분명 재성이 의찬을 가소롭게 쳐다보고 노려본다고 쓰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는 장면의 느낌은 저래도 되나 할 정도로 직설적인 의찬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상하리만치 박중훈의 매력이 잘 살지 않은, 이미지메이킹이 아쉬운 영화다.
박중훈 캐릭터에서 진짜 영화 속 이야기로 이어가자면, 영화의 구성에서도 황재성 캐릭터에 대해 또다른 아쉬웠던 점을 말하고 싶다. 순경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으로 실적주의에 빠진 황재성이 결국 아무런 실적을 내지 못하자 합동팀 해체와 함께 지구대로 보내지는데.. 물론 지구대로 보내진 후의 흐른 시간 속의 사소한 일들이 생략되었어도 ‘아 그래.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는 사소한 관찰이 더 큰 사건을 막을 수 있다는 걸 황재성은 깨닫게 되는 거구나.’ 라고 관객들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구대에 온 황재성을 반기며 상사가 해준 말에 그것이 너무나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게 끝이었다는 점이다. 생략해버린 그 시간 속의 사소함들이 바로 황재성을 변화시켰을 텐데 말이다. 한 달간의 시간동안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며 황재성의 생각에 변화가 어느 정도 생겼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순 있지만, 영화에서라면 그렇게 관객이 상상하고 넘어가라 하기엔 개연성과 설득력에 부족함이 생기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고 그 변화는 대개 사소한 것이 인물에게 전과 달리 크게 다가오면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그 사소함을 조금 더 잘 다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에서 황재성은 열입곱살의 소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변화되어 있었다. 갑자기 진지해졌으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건을 파헤치는 황재성으로 이미 변화해 있었다. 그런 어색한 변화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 앞부분에 등장했던 ‘변화하기 전 황재성’이 만났던 인물(달동네 꼬맹이)을 다시금 등장시키는 구성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개연성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에 가서, 두 주인공이 서로의 복장에 담긴 각자의 마인드와 수사하는 스타일을 알게되는 짤막한 대사가 나오는데, 그 점도 아쉬웠다.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마음으로 정장을 깔끔히 차려입고 수사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왜 실적에만 급급했던 것인지. 이상하게 황재성의 캐릭터에는 계속 집착하게 되고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철교 위에서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황재성과 정의찬의 모습은 영화의 전체와 큰 상관없이 영화를 닫는 마지막 콩트정도로 봐도 무방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로의 스타일을 바꾼 듯이 하고 나타난 그들의 모습, 그 디테일은 앞에서 말한 개연성과 설득력에 대한 아쉬움에 더 큰 아쉬움을 더해줬다. 게다가, 자살하려는 사람을 설득시켜서 자신의 구역으로 내려오게끔 하는 게 아니라 ‘죽든말든 저쪽으로‘ 식으로 보이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서로 무조건 ’이 사건은 내꺼!‘만을 외치던 그들 모두에게 닥친 변화를 반대의 대사를 통해 유쾌하게 표현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거겠지만, 마지막 장면에 그들이 보여준 태도는 과연 이전의 그들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