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갈릴래아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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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갈릴래아의 예수 독후감
갈릴래아의 예수라는 책을 처음 읽으면서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접근을 할 때 그 사건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을 보고 오세욱 교수님의 강의 스타일과 비슷한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안병무 박사님이 쓴 머리말부터가 그랬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안병무 박사님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읽었다. 안병무 박사님은 성서를 연구하면서 볼트만의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볼트만에 대해서도 알아보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는데 2주정도의 기간이 걸렸다. 안병무 박사님은 이 책을 예수를 기점으로 민중의 운동 즉 예수의 민중운동이라는 시각에서 예수를 서술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내가 배경지식과 성서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책에 나오는 성서적 용어들을 몰라서 모르는 단어를 하나하나 찾으면서 읽으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이 책을 정독했을 때에는 물론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여러 가지 신학용어도 많이 알게 되었고 또 사고력도 많이 발전한 것 같아서 우월감을 느꼈다. 이 책은 총 12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님을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 보고 그 인물에 대한 기록과 추측들로, 행위와 특히 사건(Event)에 대해서 중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1장에서는 예수님을 신격화?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봤을 때 ‘예수님은 훌륭한 사람이 아닌, 그저 그런 사람이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간적 예수님은 하찮은 집안출신에 하찮은 직업과 그리고 인간관계도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해답은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2장에서는 예수의 시대상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사건을 알려면 그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그 시대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영향을 준 그 시대 이전의 시대까지 알아야 한다며 알렉산더 대왕부터 서술한다. 2장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진짜 지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중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국사책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나오는데 하나도 아는 것이 없어서 모든 것이 생소해서 민망했다. 알렉산더가 원정을 한 이후 마케도냐, 에집트, 바빌론과 남부시리아로 지역이 삼분이 되고 그 때 안티오쿠스3세(시리아의 왕)가 이스라엘에게 특혜를 줘서 많이 이주, 정착시켰지만 로마세력을 무시하다가 로마에 패해서 12년동안 로마에게 배상의무를 하고 배상의무가 끝난 후 안티오쿠스4세가 유다교 말살정책을 펼치고 그 때 사제 마따디아의 반란으로 마카베오의 봉기가 일어나고 마카베오 봉기로 다시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그때부터 수전설이 시작되었다는 등의 이런 내용은 처음 접해본 내용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고조선에 대해서 배웠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2장의 결론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된 과정과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아래에 있었다가 시리아가 횡포를 부리자 봉기를 일으키고 시리아로부터 독립?을 하지만 그 이후에 세력다툼으로 로마제국을 끌여들여서 결국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3장에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세례자 요한이 하던 운동을 예수가 이어서 했고 서술을 한다. 나도 이 부분에는 동의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세례자 요한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자 바로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고 예수도 세례자 요한과 같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깊이 생각을 해보니 그때 당시 헤롯왕가의 횡포에 저항하기 위한 단체?가 있었는데(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 예수님도 여기에 동참해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자 요한이 죽자 바로 세례자 요한의 뒤를 이어서 공생애의 첫 발을 내딛고 또 세례자 요한과 같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요즘말로 ‘열두 제자와 함께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시민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4장에서는 예수의 소명에 대해서 다루는데 예수는 정치적 사건(세례자 요한의 체포와 처형)을 자신의 공생애 계기로 삼았으며 마태기자는 예수가 갈릴리로 간 것은 폭정으로부터 민중을 해방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5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다루는데 오세욱 교수님 스타일처럼 하나님 나라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영되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히브리의 출발부터 접근한다. 이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오직 야훼만’이라는 신념으로 인간의 지배가 없는 하나님의 주권만 용납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인간의 권력 독점의 종언’ 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5장을 읽으면서도 그 당시 피지배계층 사람들이 지배계층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주장함으로써 지배계층 사람들을 견제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억압과 착취가 없는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보지 않았을까? 저자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한 운동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내가 말한 것처럼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인간 권력 독점의 종언)를 위해 모인 지금말로 시민단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6장에서는 예수와 민중에 대한 내용인데 특히 예수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서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예수가 만난 사람들은 병자들, 여인들(당시 여성은 무시받았음.), 어부들(천한 직업), 세리, 젤롯당들이다. 즉,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천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민중’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는 민중과 식탁을 함께했다. 식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동방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는 신의와 형제애, 평화와 보증을 나누는 상징행위이며 유다에서는 종교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어 아무나와 함께 식사를 하면 안 되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의인과 죄인이 섞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다고 여기신다고 까지 말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그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가졌다. 그리고 그들을 혈연적 가족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연대관계를 최대한을 과시해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런 예수님을 민중들과 함께 권력에 맞서는 민중운동가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7장은 갈릴래아의 예수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에 깊게 남은 부분이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기적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기적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해석하면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기적이야기를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으로 보고 서술하는데, 기적이야기에는 민중들이 현실적으로 당하는 애환이 노출되어있고, 민중들의 삶을 위한 투쟁의 의지와 실천을 드러내고 있으며 민중들의 희망(앉음뱅이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 소경이 볼 수 있다는 희망 죽음마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인중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 표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치유받은 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홀로 나타났고 병의 성격은 대부분 사회에서 배척하는 병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병고침을 받은 자들에는 부유층이나 권력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 귀신추출에 관해서 다루는데 이 부분에서도 크게 공감을 했다. 귀신들림을 정신병으로 보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돌출구를 찾지 못하고 일으키는 자기파괴적 행위, 저항행위로 보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추방했다는 것은 이들에게 돌출구를 찾게 해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예수님은 공생애 절정기에 제자들을 파견할 때 귀신추출을 중심적 과제로 주었는데 즉, 제자들에게 낡은 주권과의 투쟁을 위한 능력을 주었다는 말이다.(이것은 민중운동의 확산으로 볼 수 있다.)
아홉째 마당에서는 회개에 관해서 다룬다. 회개의 사전적 의미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이다. 아마 이 당시에는 빈부격차가 너무 커서 이 회개라는 말은 지배계층 사람들에게 주로 사용했던 단어같다. 안병무 박사는 회개를 公을 公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어서 사회적 약자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아무도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배계층에 대항하는 피지배계층 사람들이 민중운동중에 사용한 단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열째마당에서는 예수운동의 적대자들에 대해서 다루는데 대표적인 적대자는 바리사이파(유다교)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비판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 번째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는 교만이고 두 번째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몰라서였다. 이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외치면서 몸과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예수님의 비판을 받았다. 열한번째 마당에서는 수난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민중이 전승한 예수 이야기는 민중 자신이 예수와 더불어 일으킨 해방사건의 이야기다. 민중과 예수와의 만남에서 병에서 해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귀신들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앞에서 말했듯이 예수는 사탄이 지배하는 낡은 세계와의 투쟁의 일환으로 보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 쟁취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수난사는 바로 민중의 수난사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상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마지막 열두째 마당에서는 부활이야기를 다룬다. 빈 무덤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죽은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다.(권력에 대한 도전, 시위) 마르코에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처형 이전의 갈릴래아의 봄으로 되돌아 가자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사건을 전제한 것이며, 마태오가 루가 그리고 요한까지도 그 다음에 전개될 예수공동체의 향방을 부활사건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의 처형 현장에서 예수는 외롭게 당하기만 한다. 그는 자기 민족에게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 뿐만 아니라 소수의 그의 제자들에게까지 배반과 배신으로 버림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마저 그를 버렸다는 사실이다. 수난사의 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