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칼의 노래를 읽고 ★ 칼의 노래 감상문 ★ 칼의 노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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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칼의 노래를 읽고
개인적으로 이책을 크게 나눠서 4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다. 초기에 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백의종군하며 조선해군을 정비하는 이순신의 모습, 명량해전의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묘사, 이후 조선해군을 다시 재건하며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노량해전과 결말로 나누어 감상해 보았다.
이 책은 이순신이 옥고를 견디며 억울한 누명에서부터 풀려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순신의 죄목은 ‘조정에 대한 능멸, 임금에 대한 기만, 조정의 출격명령에 대한 거부’ 라고 나와있다. 실제로 이순신은 조정의 요구에 대해 거부했고, 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더 나은 전투를 위한 준비과정 이었으나, 당시의 엄격한 봉건제도와 왕에 대한 충성 하에서는 이는 용납되지 않았고 후임인 원균에게 자신의 권한을 일임하고 서울로 압송된다. 이후 원균의 패배과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간략하게 묘사되어있다. 원균은 왜군의 방사형 대열의 중앙부에 하루 종일 배를저어 피곤에 지친 병력들을 일자진 형태로 집중시켰고 그 상태로 조선수군의 90퍼센트가 괴멸되었다. 병법의 기본이 피곤한 군사를 이끌고는 싸움을 피하는 것이고, 다수의 적과 싸울때는 포위당하지 말 것인데 원균은 이를 둘 다 어겼으며 따라서 싸움에서 패배하였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는 이 책을 보며 원균에 대해서 두가지 생각을 느꼈다. 먼저 역사적 사실과 별 다를 바 없이 전투에 대해서는 무능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이순신이 인계한 실물의 수량과 행정사항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이나, 한번의 큰 전투에서 대비되지 않은 전략으로 조선수군을 괴멸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에서 서술한 ‘무능한 장군’의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같이 그가 권력만을 탐했으며, 중상모략만을 일삼는 악독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 또한 알 수 있었다. 단지 그는 지략이 부족하고, 전공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인물일지 언정, 단순한 악인은 아님을 보았다. 어찌됬든 원균은 패하였고 이순신이 모진고문을 겪은 이후 그는 백의종군의 상태 였기 때문에 바로 그에게 자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도원수 권율의 요청으로 남해안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 묘사되어있다. 이 소설은 주로 이순신 개인의 1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묘사하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을 파악하기에 용이할뿐더러 진부하지 않아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영웅으로만 알려져 있는 충신이순신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 이순신은 당시의 상황을 복구가 어려운 상황으로 인정하고 한 개인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당시 왜군이 휩쓸고 간 경상도의 해안과 남해안의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음이 사실이고, 해군의 대부분의 주력을 잃은 상황에서 명목만 남은 ‘삼도수군통제사’ 로 부임한 이순신의 생각은 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왜군에 대한 불타오르는 복수의 심정보다는 오히려 이 책에서 묘사한바와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더하여 자신을 못 믿은 조정에 대한 분노와 은근한 비꼼의 어투를 더하여 은근한 분노까지 표현하는 묘사는 명장 이순신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느끼게 했으며, 나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남해안을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이순신에게 접근해 오는데 ‘여진’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바로 그녀이다. 이 여진에 대한이야기는 허구에 가깝지만 실제로 난중일기에도 여인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다 표현 했던 이순신 장군을 모티브로 하여 지어냈기 때문에, 소설의 이 부분은 이순신의 공적인 부분들만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 소설에서 이순신은 관기를 다루는 일반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국가의 존망상태와는 무관하게 색을 탐하는 어떻게 보면 실망할 수 도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순신은 법을 집행하는 모습에서는 엄격한 법치주의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을을 버리고 달아난 죄수들을 엄벌에 처하고, 탈영한 김옥천을 잡아서 사형에 처하는 모습과 배설을 쫓아서 죄를 물으려는 모습에서는 이순신의 본래 이미지인 엄격한 장군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이순신은 임금에의해 다시한번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게 되는데 이때에 나오는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 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라는 대목에서 임금에 대한 솔직한 마음과 함께 이순신의 비참한 심정까지도 엿 볼 수 있었다. 결국 이후 임금의 장계를 수락하고 적에게 결사항전 하겠다는 장계를 올림으로서 다시 그 자리를 맡게 된다.
소설은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의병장 김덕령과 곽재우의 소식을 들으면서 시름에 잠기게된다.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다가 공모자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였고, 곽재우 또한 의병을 일으켰으나 임금의 의심으로인해 공모자로 몰렸다가 풀려나게 된다. 이둘을 보면서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벗어나고 재임명 된 현재에서 자신을 이 둘의 뒤를 따라가지 말고 차라리 적에의해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는 것이 최선책임을 이미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 작가는 이순신의 죽음을 복선으로 깔아놓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이순신은 전쟁에대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배설이 빼돌려놓은 전선10척과 남은 병력을 정비하고 척후병을 통해서 적에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파악하기 시작한 결과 적의 전선이 300여척이 되는 것과 함께 격전지를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물살의 흐름이 여러번 바뀌는 명량의 바닷가 중에서도 적이 호남을 거쳐서 서울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울돌목을 점찍게 된다. 10대 300이라는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서 이순신은 저 유명한 명언으로 ‘필생즉사 사즉필생’이란 말을 남기는데 이 책에서는 ‘사지에서는 살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길이다. 살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라는 이순신의 대사로 묘사되고 있다. 실로 소름끼치는 명대사이고 앞으로도 많은 위기의 상황에서 상황을 뒤바꾸려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말이라 느꼈다. 10척밖에 없는 전선탓에 이순신은 횡렬진인 일자진으로 적을 맞이한다. 이 때부터는 명량해전의 상황을 눈앞에서보는 듯한 묘사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최초에 일렬진을 후퇴시켜 적을 끌어들인다음 물살이 바뀌는 동시에 싸움을 시작하는 장면이나, 후퇴하는 장졸들을 격려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게 하는 장면, 배위에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을 낫으로 쳐내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마치 내가 이순신장군이 되어 명량해전을 겪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두 번째 파트에서는 울돌목의 빠른 조류의 흐름과 물살의 흐름의 변화를 이용하여 압도적인 수적, 기능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을 현실감 넘치게 묘사하였다. 이후 왜군을 추격할 병력이 없었기에 대승을 거둔것에 만족하고 군대를 거둬서 승리 후 뒤처리를 하기 시작한다. 이순신은 적이 놓고 간 배에서 전리품을 꺼내고 적장 구루지마의 목을 거두고, 연안의 읍진을 돌며 시체를 거두는 행동을 지시한다. 특히 역질이 돌고 도적이 들끓어 각군의 관아가 피탈당하는등 상황이 비참했는데, 명량에서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승리에대한 치하의 의미에서 임금은 면사첩과 은전20전을 보내오는데, 면사첩에서는 죄가 없다고 하는것이 아니고 지은죄를 용서해주겠다는 의미와 함께, 은전20전에서는 임금의 따가운 눈길이 느껴진다고 표현했을만큼 이순신은 승리에대한 보상보다는, 임금의 감시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 중앙정부의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이순신은 아들의 죽음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때 부하들 앞에서는 무인답게 담담하게 받아드리는 모습을 연기했지만, 혼자있을때는 아들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다시한번 회상하고, 소금창고안에 들어가서 아들을 생각하며 우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장면에서 한 아이를 잃은 아버지로서의 이순신의 솔직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즉 지도자의 위치에서 애써 초연한 모습을 보여야하는 가장의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후 이순신은 명량대첩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여 전선을 전조하고, 화포를 재정비하며 적의 조총을 거둬드리는 등의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또한 적을 맞기 위하여 우수영에서 고하도 쪽으로 영을 옮긴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무기제조와 전법의 훈련이 시작된다. 무기 제조창을 설치하고 대장장이들로 하여금 농기구가 아닌 총통을 모방하여 똑같이 만들게 하고, 밑에서 기어서 올라올 적에 대비하여 창이아닌 자루가 길고 날이 넓은 낫인 장병검을 제조하여 본격적인 전투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투준비에도 불구하고 군량조달에는 어쩔수 없는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는 왜군이 휩쓸고 간 탓에 농경지가 황폐화 된 탓이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이에따라 이순신은 1인당 섭취량을 5홉에서 4홉으로 그리고 3홉까지 차차 줄여나갔으며, 수군의 이점을 활용해서 생선을 잡은 후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보릿가루를 물에타서 저녁을 먹이기 까지 했다. 심지어 허기를 달래고자 수상진법 훈련을 정지시키기 까지했는데, 이는 그당시 백성이나 군사들의 배고픔이 어땠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에 식량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자 결전을대비해 진법훈련을 개시하는데 이순신이 꿈꾸는 전투과정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대목이었다. 초반에 선두였던 대열이 후퇴하다가 갑자기 날개를 펼치면서 선두가 후미가되고 후미가 선두가되어 적을 섬멸하는 전법이었으나, 연습과정에서는 그 날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근심에 가득차 있던 이순신의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명의 지원군을 맞이하게 되는데 왕의교서로 인하여 이순신은 극진한 대접을 강요당하게 된다. 실제로 명의 군사들은 잦은 술자리를 요구하였으며, 전투의지가 약했고, 조선에 있는 왜군과의 접전보다는 그들을 걷어내서 왜로 돌려 보내는대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명군의 의도는 명의 수군 총사령관 진린의 대사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총지휘하는 일본막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음을 이미 파악했으며 따라서 점차적으로 왜군이 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