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리콴유 자서전을 읽고 리콴유 자서전 줄거리 리콴유 자서전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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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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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리콴유 자서전을 읽고
출판사: 문학 사상사
저자: 리콴유
옮긴이: 류지호
출판년도: 1999년 10월 18일
1.학창시절
1923년 9월 16일 싱가포르를 바꿀 한 지도자가 탄생한다. 그 이름은 리콴유. 그는 어렸을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성적도 우수해 우수반으로 진급을 하기도 했다. 또한 졸업 시험을 수석으로 차지해 래플스 대학에서 입학을 권유하기 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래플스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그 대학을 통해 그는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41년 12월 8일 싱가포르는 새로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군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싱가포르 학생들이 의료보조 지원대의 래플스 대학 분대에 자원입대했고 리콴유 역시 자원하여 캠퍼스내의 한 초소에 배치된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결국 일본군에게 점령되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일본은 영국과는 달리 난폭적으로 더 악의적으로 그들을 다룬다는 사실을 안 그는 일본인에 환멸을 느끼며 영국에게 지배받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식민지 시절 살아남기 위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뭐든 해야 했던 그는 고무풀 고안해내 고무풀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고무풀 사업은 1944년말까지 6,7개월 동안 계속된다. 이 무렵 일본군의 전황은 거의 최악이었다.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그에따라 고무풀의 수요도 줄어들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고무풀 사업을 그만두기로 한다. 일본군은 결국 항복하였고 싱가포르는 다시 영국이 지배하게 된다. 영국이 지배하게 되자 리콴유는 래플스 대학 복학 대신 영국에 유학 갈 것을 결심한다. 영국에서 법을 공부한 리콴유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추와 결혼을 한다. 그들이 틴타겔에 머물고 있을 때 케임브리지 동창인 데이비드 위디콤브가 노동당 후보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를 하게 돼 그를 도와주게 된다. 추와 리콴유는 선거 전날 까지 그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선거 운동을 해보게 된다. 선거운동을 마친후 1950년 5월 추와 리콴유는 사법고시를 치르기 위해 런던으로 간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귀국한다. 유학시절 영국에서는 획기적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애틀리 정부는 완벽한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리콴유가 후에 정치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2.싱가포르에서의 재판
싱가포르에 귀국후 1951년 8월 추와 리콴유는 길고 긴 1년간의 법정 변호사 수업 과정을 마친다. 법정 변호사 자격을 얻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오랜 친구인 탄 투립으로부터 네 명의 말레이계 피의자들의 변호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찰스 조셉 라이언이라는 영국 공군 장교가 살해된 혐의로 말레이인 13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던 것이다. 결과는 피고 열세 명 모두 살인 혐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리콴유는 이들 중 네 명이 분명 라이언을 죽였으며 그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백인이거나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죽였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는 거짓을 말한 것과 이런 결과에 대해 메스꺼움을 느끼게 된다.
1952년 어느 오후 말레이인 세 명과 인도인 한명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그들은 집배원 및 전화 교환수 노조가 임금인상을 위해 식민정부와 협상을 벌여 왔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고 설명하며 자신들 노조의 법률고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리콴유는 이 요청을 수락함으로 노조 선임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정부와의 협상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결렬되고 만다. 이에 격분한 노조들은 파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파업에 당황한 정부는 노조원들이 직장에 복귀하면 새로운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한다. 이로써 파업은 끝났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어낸다.
3.인민행동당
1954년 일요일 아침 두 남자가 리콴유를 찾아온다. 두사람의 이름은 림 친시옹과 퐁 쉬수완이었다. 리콴유와 그들이 모인 이유는 비공산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말라야 건국이라는 궁극 목표를 위해 중국어 교육을 받은 중국인 노동자 세력을 규합하기 위함이었다. 그해 10월 그들은 당의 출범을 공포했고 11월에 창당 대회를 연다. 신당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고 사람들은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인민행동당이 생겨나게 된다. 후에 또다른 파업사태 마셜의 어리석음등을 겪으면서 인민행동당은 점점 핵심이 되기 시작한다.
런던에서 개헌회담이 열리기전에 리콴유와 인민행동당은 싱가포르 자치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 그러나 계속 말레이 연방 편입을 모색할 것이라고 공식 성명을 한다. 하지만 마셜은 이러한 공식 성명이 자신의 입지를 깎아 내리기 위함이라고 믿고 리콴유가 1959년 선거를 통해 공산정권을 수립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헌회담은 회담을 가지면 가질수록 초점을 잃었고 타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본 레녹스 보이드는 더 이상 회담을 끌 이유가 없다며 개헌회담 종료를 선언한다. 리콴유는 회담에서 결정한 합의안을 수용하도록 마셜에게 권고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마셜이 회담 재개를 하려고 하자 리콴유는 그런 마셜의 행동은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추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림 친시옹과 함께 런던을 떠난다. 개헌회담은 실패로 끝났고 마셜은 사임한다. 그의 사임과 동시에 림 유혹이 새로운 총리가 된다. 하지만 림 유혹 정부의 공산주의 탄압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런 폭동을 통해 리콴유는 공산주의자들을 너무 나약하게 혹은 너무 강하게 다루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