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는눈 이기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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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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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사를 보는 눈
1.한국사의 전개와 민족의 이상
여기서는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이기백 작가가쓴글이다..
자유와 평등은 흔히들 서로 상충. 모순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백 작가는 볼수 없다고 말했다. 왜냐면 .근대에 와서 과거 신분 제도을 혁파 한 것은 누구나 평등 한 입장에서 정치 활동의 자유경제 활동의 자유을 위시해서, 직업 선택의 자유, 결혼의 자유 등의 여러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이없이는 자유가 무의미하고 자유가 없이는 평등이 또한 무의미 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점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써있는데 나는 월래 그런 거라고 생각 했는데 이글을 읽어보면서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서평이란 이글을 보고 느끼고 내 자신에 대한 판단을 쓰는 것인데 자신에 판단이라 모르겠다. 그냥 한국 역사을 보는 관점에서 짤게 요약한 내용 같다 그래서 이글을 읽으면서 바라는 점은 고쳐야 할 점을 말을 해야는데 내가 아는 지식이 없어서 글을 그냥 옮겨 썼다.
한국사의 전개와 현대
이글에서는 민족의 이상 이라는 것을 생각 해봐야겠다고 나온다. 민족 이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책을 읽으면서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겟다. 그래서 처음부분을 에서 나오는 글을 조금 써본 것이다 현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어서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대립되어 있눈 구면도 잇고 우리 남한만 하더라도 갖가지 이기주의 적인주장이 분출되어 혼란된 양상을 띠고 있는데 비록 상호간에 의견의 차이는 있더라고 민족이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나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런데 현제로는 이런 구심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안는다 이것이 민족의 위기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도 있어서 민족의 이상이라는 문제을 깊이 다루어야 한다 여기서 민족의 이상이라는 단어에 난 아직두 민족의 이상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민족의 이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민족의 사명이라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현실 국가의 행동. 태도가 흔미할 때에 국가의 이상을 생각하고, 현실 국가 광란할 때 에 이상의 국가를 생각한다. 말로 시작된 이글은 국가의 개개구성 분자의 주관을 초월하고 또 개개의 여러 현실 국가의 구체적인 정책 목적을 초월하는 모든 국가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통일적으로 국가이게 하는 객관정신, 이것이 국가의 이상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리하여 우리가 국가의 이상으로서 인식하는 바는 사회적 및 조직적인 원리 다시 말하면 사회에서 조직을 부여하는바 근본 원리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성질을 가지는 원리는 정의이다 이어서 정의의 원칙이 있다 해서 비로소 실력을 달리하고 주관적 욕망을 달리하는 다수 개인의 사회적 집단이 가능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실력을 달리한다.” 이것은 평등의 개념과 관계가 되고, “주관적 욕망을 달리한다.” 이것은 자유의 개념과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평등과 자유를 원하는 다수 개인의 사회적 집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의원칙이라고 말입니다.
역사적인 구체적인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한일입니다. 예를 들어 중세를 봉건 사회라고 하지만 봉건이 없는데 봉건사회는 있을 수 없고 노예사회가 있다고 하지만 노예가 생산의 기본적인 노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이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역사의 대부분이 사실은 신석기시대와 근대를 빼면 중간의 고대 중세건간에 지배계급이라 기보다는 지배신분충이라고 하는데 귀족 신분층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가 전개되어 나갔습니다. 그걸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민중이 주인 이었다고 얘기을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를 신석기시대부터 있엇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국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국가라는 건 신석기시대에는 없었습니다. 이기백 작가에게 어떤 방송사 과장이라는 분이 전화를 걸어서 왜 신석기시대에는 국가가 없느냐고 해서 이기백 작가는 “어린애가 나서 처음부터 말을 하고 걸어단니고 학교도가고 하지는 안는 거나 만찬가지다 라고 말했답니다. 국가는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이후에 국가가 생겼는데 처음 그런 국가는 조그만 국가입니다. 과거에는 부족국가라고 그것은 성읍국가 라고 합니다 . “성읍국가”는 원시사회에서 고대국가로 전화하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나타나는 국가 형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전체에 수많은 성읍국가가 있을 겁니다. 한강 이남에 대체로 78개가 있던 것으로 되어 만주까지 포함한 전국에 100개는 훨씬 넘는 국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국가에서 부족장들의 전통을 이은 사람들이 왕도 되고 관리도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통합되어 삼국 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되었는데 삼국시대에 왕족과 왕비족이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가집니다. 말하자면 권력자의 범위가 점점 축소 되어가는 거지요. 고구려 5부가 있엇고 백제는 8성이 있었고 신라에도 여러성이 있지만 핵심을 이루는 것은 왕족과 왕비족이다. 그래서 고구려에는 고씨가 왕이었는데 연나부 출신이 반드시 백제에는 부여씨 가왕인데 진씨가 왕비 노릇 신라에는 김씨가 왕인데 왕족인 박씨가 왕비가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삼국모두 한 100년씩 그런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족과 왕비족이 연합해서 실권을 쥐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애기로 신라의 진지왕 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색을 좋아해서 도화녀라는 미인 유부녀를 밖에서 한번보고 반해 밤에 도화녀에게 찾아가 동침을 구했는데 도화녀는 나는 유부녀인데 내목을 자르는게 낫지 그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왕이 자꾸 조르니까 도화녀가 남편이 죽으면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되겠다. 하는바람에 왕이 포기하고 갔는데 뒤에 도화녀 남편이 죽엇엇요 그때는 진지왕도 죽었을 때인데 이번에는 죽은 혼이 찾아가서 네가 남편이 죽으면 괞찮다고 그랬지 않느냐 하고 관계를 해서 애를 낳았답니다. 죽은 진지왕의 귀신이 결혼해서 애를 낳았기 때문에 애도 귀신이었지요 그래서 낮에는 자고 밤에는 밖에 나가 귀신들과 놀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왕에게 그것을 보고 했습니다. 그럼 지금 강에 다리가 없어 걱정이니 네가 귀신들을 동원해서 다리를 놓아라 해서 하룻밤 사이에 돌다리를 놓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진지왕이 죽어서 와위로부터 물러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쫒겨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도화녀가 박씨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박씨가 아닌 여자와 관계를 하니깐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서 법을 어겼다고 쫒아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왕족과 왕비족이 결합애 있다가 통일신라시대가 되면서 왕비족은 세력이 없어지고 아주 몰락합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왕이 김씨인데 왕비도 김씨입니다. 같은 집안에서 결혼합니다. 그리고 왕권은 아주 전제화되니다. 그전제화된 임금 중 대표적인 임금들이 성덕왕인데 성덕대왕신종 이라고 봉덕사종이 있잖습니까. 바로 그 성덕대왕입니다. 그종을 만든 경덕왕은 불국사를 짓고 석굴암을 지은 왕인데 이 경덕왕이 전제주의적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아들 낳은 얘기의 설화가 있다.
애기는 경덕왕에게 부인이 이혼을 하고 새 부인을 맞아 들였는데 그런데 그 새 부인이 또 애를 못 가져 그래서 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있어야겟다는 간절한 생각에서 불국사의 표훈 이라는 유명한 중에게 하늘에 올라가 천제를 만나서 아들을 낳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표훈이 하늘에 올라갔다 그래서 천제를 만나 “경덕왕이 아들낳기를 바라데 좀낳게 해주시오 했는데 천제는 딸이라면 되겠지만 아들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표훈이 내려와 그애기를 전했습니다. 전에 여왕이 있기는 했지만 여자는 왕위 계승자로서 적합하지 않햇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아들로 변경시켜달라고 그랬는데 표훈이 다시 하늘에 올라가서 왕이 얘기를 전하닌깐 그 천제가 아들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질텐데 그래도 좋다면 아들로 바꿔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엄연히 구별이되 는데 네가 하늘에 오르락내리락 하니 안되겠다 하면서 이제는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내려가 얘기를 전하닌깐 나라가 어지러워 져도 좋으니까 아들을 낳게 해달라 해서 낳은게 혜공왕 이다 그혜공왕이 17년 정도 왕위에 있었는데 거의평균 2년마다 한번씩 반란이 일어나서 결국 혜공왕은 발란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얘기는 아마 해공왕이 죽은 뒤에 꾸며낸 이야기 겠지만 그이야기 속에 나타난 것은 경덕왕이 후계자로 꼭 자기 아들로 해야겠다는 집념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건 전제 군주의 아주 기본적인 속성이다. 여기서는 역시 역사에서도 남자를 선호한다는 이야기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