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제주 4 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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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가 느끼는 제주 4 3 사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내가 느끼는 4.3
4월은 예쁜 꽃이 피고 날씨도 따뜻해지는 진정한 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달에 제주도의 1948년에는 4.3사건이 일어났다. 제주 4.3사건이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4.3의 정의에 의하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 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한다.
나는 제주 4.3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4월 8일에 제주 4.3 평화공원에 갔다. 평화공원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흐렸지만 역시 4월이라 그런지 벚꽃이 활짝 펴있었다. 조금은 들떠있었지만 평화 기념관에 들어가면서 다시 엄숙해지고 차분해졌다. 평화 기념관 제 1관에는 어떠한 글자도 새겨지지 않은 거대한 백비가 있었다.
옆에 설명하는 글에 ‘4.3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라고 적혀있다. 묘비에는 원래 글이 새겨져 있지만 이름 짓지 못한 역사라고 일컫는 것과 같이 새하얗게 덩그러니 있는 백비를 보니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이 어서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길 바란다.
다랑쉬굴 특별 전시 코너는 그때 당시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과 학살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많이 어둡고 추운 동굴 안에서 두려움에 시달렸을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너무 안쓰럽고 속상했다.
그리고 전시관을 계속 둘러보다 한쪽 벽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차원의 무고한 시민을 대량 학살한 내용을 인정하고 공식사과를 하는 영상을 보았다.
특별법이 제정, 공포된 후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가 들어갔지만 접수된 사건희생자 신고 건수 외에도 신고 되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이 많다고 한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왼쪽의 사진에 적혀있는 것처럼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라는 말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섬이라는 지형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고 두려움을 안고 산 속으로 혹은 굴 속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때 당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죽음과 점점 늘어가는 시체들을 보고 매번 충격 받으며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감옥이자 학살터라는 말이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주도민이지만 4.3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관심 또한 적었다. 하지만 이번 리포트를 계기로 고등학교 때 갔던 4.3 평화공원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제주 4.3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며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대량 학살을 당했던 제주 4.3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우리가 다시 평화롭고 아름다운 제주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희생이 있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