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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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죄와 벌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적 욕구의 습득, 삶의 간접 체험, 새로운 삶의 원동력 추구, 킬링 타임 등등. 무수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하고 있다. 이번 방학을 맞이하여 책 한권을 반드시 완독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과 욕심 그리고 내 자신에게 반복된 약속으로 “죄와 벌”이라는 명저를 탐독하게 되었다. 많은 작품들 중 ‘죄와 벌’을 택한 이유는 어릴 때 이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어렸을 적 읽었을 때와 나이를 먹고 읽었을 때 느끼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독서는 어렸을 적과 다르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조금 더 세상을 살아보았다고 해야 할까? 세상의 탐욕과 거짓을 보아서 그랬을까? 읽는 내내 고뇌에 빠지며 심사숙고 하게 되었다. 독서를 하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 물음을 끊임없이 자문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 감상은 “죄와 벌”을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여기서 거시적 관점이란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해 깨닫고 느낀 바를 의미하고 미시적 관점은 책의 사소한 부분에 대해 느낀 점을 의미한다.
먼저 거시적으로 봤을 때 ‘죄와 벌’이라는 작품은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것’을 ‘선‘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든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의 짐을 대신 들어드리는 사람들을 보고 ‘착하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착하다’는 곧 ‘선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과연 ‘착하다=선하다’라는 이치가 맞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는 분명 ‘착한사람’인 것은 맞다. 의협심이 강하고 자신의 처지가 힘든데도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 보통 상황에서 분명히 그는 ‘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하게 된다. 그것도 계획된 살인! 그는 전당포 주인인 노파를 ‘벌레(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그것을 죽여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사람들도 그 노파가 죽길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동기가 된다. 여기서 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의감, 의협심 등은 자신이 곧 정의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썼던 논문의 내용에는 보통사람과 비범한 사람이 있는데 비범한 사람은 법의 규제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책 내용에 분명히 나오지는 않지만 라스콜리니코프 자신은 ‘나는 비범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비범한 사람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듯싶다. 자신의 살인이라는 행동에 대해 계속해서 합리화를 하지만 결국 살인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리고 그는 죄책감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죽여 놓고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라스콜리니코프를 보며 굉장히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대중들 중 한명일 뿐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정의감과 의협심, 죄책감 등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을 가져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살인은 안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상황이 살인을 하기에 적합하고 주변에서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해!’라며 인간 내면에 악한 본성의 편을 들어준다면 어떤 누구라도 이러한 살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 후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자수를 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할 것이다. 내가 섬뜩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추악한 본성이 나타나게 되면 충분히 나쁜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라스콜리니코프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그 외의 부류는 어떤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까? 소냐, 리자베타 혹은 루진, 전포당의 노파와 같은 부류 아닐까? 누가 봐도 소냐, 리자베타 같은 부류는 ‘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들이 과연 진정한 선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히 ‘yes’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이들처럼 산다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소냐는 가족부양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일까지 한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기특하다, 대단하다’라는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나 동생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혈연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나? 분명 이런 생각은 이기적인 사람의 입장에서나 나올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냐라는 캐릭터는 ‘선’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람들에 비해 이기심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루진, 노파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무조건 ‘악’일까? 사실 지금 사회에서 소냐의 부류보다 루진, 노파의 부류가 더 많다. 루진과 노파의 공통점을 나타내는 말은 ‘가진 자의 횡포’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어떠한 이유로 인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악’이라 보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아마 ‘돈’일 것이다. 특히 노파의 경우는 ‘돈’의 영향이 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면 ‘명예’정도가 될 것이다. 그녀는 죽어서도 기부를 통해 다른 이들이 자신을 신봉하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명예’도 그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원인이 될 수 있다. ‘국민소득 1만 달러까지는 행복과 부가 비례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아니다’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루진과 노파 모두 그 행복의 선을 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돈에 대한 소유욕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루진은 ‘돈이면 뭐든 가질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랑, 우정, 행복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인데 이것들마저 돈으로 해결을 하려하다 보니 ‘악’에 가까워 보인 것 같다.
세 부류의 사람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았는데 확실한 답을 내지 못했다. 사실 ‘선과 악’의 정의를 내리기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미시적 관점으로 느낀 바를 이야기 해보고 싶다. 먼저 책의 앞부분에서 ‘경제적 관점에서 동정은 없다’라는 구절이 와 닿았다. 물질 만능주의를 살고 있는 현 시점에 이 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분명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동정은 투자가 아닌 소비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런 인간은 인간미가 없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이 문장은 문장자체가 굉장히 모순이다. 즉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동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가 유지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경제적 관점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 된다.
소냐의 어머니 카테리나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거의 벌레취급을 하면서 돈을 벌어오면 발에 키스를 해줄 정도로 잘해준다. 이는 카프카의 ‘변신’에서처럼 ‘인간소외’ 현상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언제부터인가 돈 버는 기계가 되어버린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과연 어떤 것이 선(善)의 행동이며 어느 선까지 포용이 가능 한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개인이 하지 못하는 일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 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생계를 위해 벼랑으로 내몰리며 몸을 팔고 있는 실정을 보면 분명 안타깝고 잘못된 현실이지만 국가가 그들을 외면하는 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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