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와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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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블레이드 러너와 프랑켄슈타인
SF 영화의 고전격인 블레이드 러너와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서로 닮은 꼴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에서 태어난 괴물과 replicant들은 세상에 태어나 환영받지 못하고, 창조자에게서 조차 외면당하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또한 영화와 소설의 곳곳에서 인간의 오만함이 신의 영역인 창조에 침범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신적 계획없이 태어난 피조물들은 창조자조차 통제할 수 없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렐 박사는 그의 피조물 로이의 손에 죽게 되고,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박사는 그가 창조한 괴물의 복수극에 의해 죽는다. 그런데 빅터 박사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엷게 띤 미소의 의미가 참 궁금하다. 그는 괴물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었으면서도 복수를 하지 못하고 맺는 삶에 대해 만족한 듯 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의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6명의 Replicant들은 4년이라는 짧은 수명에 불만을 품고 탈출하여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주인공 데커드는 탈출한 6명의 Replicant들을 죽이라는 임무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로이와 그를 없애려는 데커드의 전투 장면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로이는 죽음을 매일 대면하면서 느끼는 살고 싶은 처절함과 운명을 피하고 싶은 비겁함을 데커드로 하여금 느끼게 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음에도 데커드를 쉽게 죽이지 않고 계속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는 데커드에게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한 것이다. 로이는 그런 삶은 삶이 아니며 죽음의 노예나 다름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데커드가 궁지에 몰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곡예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감상자는 로이의 고통스러운 삶을 간접체험 할 수 있고, 로이의 처절한 살고자하는 욕망에 깊게 감동받을 수 있다.
로이가 데커드를 바로 죽이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계속 느껴보도록 한 방법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도 잘 나타난다. 괴물은 빅터 박사를 바로 살해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고통과 맞먹는 깊고 계속되는 고통을 맞보도록 괴롭힌다. 괴물은 박사의 동생, 하녀, 부인과 친구를 차례로 살해하고 그를 증오로 가득찬 존재로 만든다. 빅터는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괴물이 파놓은 함정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는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오직 괴물을 죽이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괴물은 박사가 제풀에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 빅터 박사가 느꼈던 증오와 고통은 괴물이 살아오면서 느낀 냉대, 소외, 격리, 차별등의 아픔을 모두 합친 것 보다 조금 더 클 것 같다. 일종의 성공적인 복수이다.
두 작품에서 피조물들이 무책임한 창조자와 냉혹한 사회에 대한 복수로 자신들의 고통을 전달하고자 창조자 혹은 사회 대표에게 고문을 가하는 장면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빅터 박사가 죽으면서 흘린 가벼운 미소의 의미는 괴물의 복수극에서 비로소 해방되어 얻은 안도감의 미소일까? 1차적으로는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조금더 생각해 보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만족감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죽기 전에 왈튼 선장에게 자신의 욕망을 넘치게 추구하는 것이 독사가 되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다. 또한 고요함 속에서 행복을 찾고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겠다는 지나친 야망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빅터 박사가 왈튼 선장에게 던진 이 충고에서 알 수 있듯이 박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속죄의 마음으로 죽음을 달갑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박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또 다른 희생자와 가해자의 비극을 막으려고 노력을 다하였다. 결국 왈튼 선장도 생각을 바꾸고 북극을 향하던 뱃머리를 돌려 영국으로 향한다. 무책임한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시키기는 커녕 끔찍함을 줄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임무를 다한 박사는 엷은 미소를 띄고 죽는다. 자신의 인생에서의 고통과 죽음이 속죄양이 될수 있다면, 또 경고의 메시지가 될수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죽을 때 하얀 비둘기 등장한다. 비록 로이는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탐하던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흰 비둘기의 등장은 그의 죽음이 속죄양이 되어 인류의 죄를 용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빅터박사의 마지막 웃음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흰 비둘기의 등장과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