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 도강록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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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 - 도강록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을 읽고
1
서문(序文)에서 연암 박지원은‘내가 이 책(북학의)을 펴보니 나의 ‘일록(日錄)’[열하일기]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어, 마치 같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하도 기뻐서 사흘 동안을 읽었으나 조금도 지루함을 못 느꼈다.’고 술회했다. 이 말은 소위 고문(古文)이라 불린 글과는 달리 내용이 참신하여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를 읽는 동안 한 시대를 고뇌했던 한 선구자의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대한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벽돌, 기와, 수레 등에서부터 소, 말 등에 이르기까지 박제가의 사물에 대한 탁견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와 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연암의 말은 내용을 떠나 선진 문화의 수용을 통하여 도탄에 빠진 조선을 구하고, 현실은 날로 곤궁해지는데 팔짱만 낀 채 방관하는 당대 양반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점이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양한 형식으로 쓰여졌으며 는 보고문 형식을 사용하여 견문을 보다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형식면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의 지향점은 일치한다. 중국의 것을 거울삼아 우리 나라의 모순된 현실을 개혁하고 이용후생(利用厚生)하여 올바른 덕(正德)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와 같은 것은 와 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연암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필요성을 북학의(北學義)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 예(禮)는 차라리 촌스러워야 한다고 말하고, 더러운 것이 검소한 것인 줄로만 안다. 소위 사, 농, 공, 상의 사민(四民)이라는 것은 이제 명목만 남아 있고, 이용후생(利用厚生)할 재원은 날로 궁핍해져만 가고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닌 학문의 도를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차 학문을 하려고 하면 중국을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할 것인지 의구스럽기만 하다. (중략) 그들의 언어는 주리라고 함부로 업신여겨서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도 동시에 배척하려 드니, 그렇다면 장차 어느 나라를 본받아서 발전해 나가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연암의 위와 같은 태도에서 의 저작 의도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당대의 실천적 지식인들의 공통된 관심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북학(北學)의 수용, 즉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현실을 개혁하고 나아가 문화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시대착오적 지식인들의 각성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연암과 그의 수제자인 초정의 이러한 생각은 ‘이것들을 우리 두 사람이 직접 가서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단 말인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이들 문제는 우리가 비 오는 지붕 밑에서, 눈 내리는 처마 밑에서 연구하고, 술을 데우며, 등잔의 불똥을 따면서 손바닥을 치면서 이야기 했던 것들이다.(북학의)”와 같이 우연의 결과가 아닌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려는 실천적 지식인의 고뇌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는 1780년 6월 24일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6월 24일 신미(辛未)에 시작하여 7월 9일 을유(乙酉)까지 일기체 형식으로 쓴 글이 중 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은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 글로 과 더불어 연암의 실학사상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북학파의 영수로서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바탕으로 바른 도리 즉 정덕(正德)을 구현하고자 했던 연암의 정신이 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박제가를 비롯한 당대 실천적 지식인들의 생각이 에 어떤 양상으로 반영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2
6월 24일, 사신 일행은 방물(方物)이 모두 도착하자 압록강을 힘들게 건너 30리 떨어진 구련성에서 노숙한다. 26일 구련성을 떠나 30리를 가서 금석산 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총수에서 노숙한다. 그리고 6월 27일 아침에 압록강에서 100여리 떨어진 책문에 도착한다. 책문 안에는 2.30호 인가가 있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의 잘 정돈됨을 보고 연암은 견자(見者)의 깨달음을 드러내고 실학자로서 이용후생 정신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