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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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1, 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시아 기독교사 연구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1, 2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기독교가 the South 즉,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이 말의 뜻은 기독교의 시대가 개발도상국에서 동트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이러한 말들은 기독교의 시작이 그들이 말하는 개발도상국이였음을 망각하고 망각한 말들이다. 물론 이 레포트를 쓰고 있는 나 또한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이며, 성경은 피부가 흰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기독교가 아시아의 종교라고 인식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매체를 통해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라는 세뇌아닌 세뇌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가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되고 있다’라는 말을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제 3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 기독교의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는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사도 도마의 선교여행을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초기 기독교 역사는 A.D 1500년 경에 매우 복잡한 원인들로 인해 끝이나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의 아시아 초기 기독교 역사를 기억하기 보다는 이후의 선교사들의 선교여행을 통한 기독교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라고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선교사들의 선교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선교사들은 도덕적 우월감의 태도와 지신이 배타적으로 의롭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교지에 왔고, 기독교 우월감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무의식적으로 주입했던 유럽인의 우월감은 아시아인들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문화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아래 깔려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라고 인식해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서양이 더 발전한 지역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즉, 우리가 동남아시아로 선교를 할 때에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덜 발전을 한 동남아에는 기독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선교활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나라보다 몇 백년은 앞선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라는 것 외에 우리는 한가지 또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있다. 지금의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다.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초가 근대 서양의 선교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 된 주장이다. 중국, 일본, 인도의 교회 역사를 연구하면, 기독교 일치를 위한 진정한 계기는 그나라들 내부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왔고,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운동은 서양의 선교운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시아 나라들의 민족운동, 민족주의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사에서 서양 선교사들의 역할을 과장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회들의 협력을 축소하는 경향은 잘 못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아시아 기독교사 연구 강의를 듣는 우리는 서양 교파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침으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장을 열었던 인도, 중국, 일본의 그리스도인의 공헌을 알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필리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그리스도인은 소수 종교공동체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시아국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접하는 종교 전승들은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잘 발달이 되어있으며, 심오한 깊이와 아름다움을 지닌 경전들과 수많은 성인들과 현자들을 가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 아시아에서 전반적인 선교 역사 속에서 이러한 아시아의 종교 전승들은 선교사들에 의해 야만적인 억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선교사들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회유, 강요, 심지어는 무력을 사용하였고, 신학적인 차원에서, 많은 선교사들은 아시아 종교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이교’나 미신‘정도로, 혹은 기껏해야 신에게 잘못 인도하는 행위로 취급하였다. 전반적으로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학은 타종교 전통을 가진사람들이 오류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복음의 메시지가 필요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기독교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아시아에 행해진 서구의 초기 기독교 선교는 다른 종교에 기반을 둔 이웃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분리시켰고,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의 사람들로부터 나온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인해, 초기 선교는 기독교 개종자들을 그들이 가져 온 문화로부터 단절시키는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 운동은 기독교 공동체와 비 기독교 공동체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되어 아시아에 있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들을 아시아 국가 공동체들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시아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선교학과 신학 역시 서구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타종교를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잘못된 초기 선교 방식 때문에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에 비에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서구교회들이 지역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타종교를 인정하는 목회’를 수용하는 반면, 아시아 교회들에서는 이런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가 없다고 한다. 아시아 소수 기독교는 타종교 전통들로부터 반대나 고립된 상태에서 정체성을 발전 시켰다. 왜냐하면 타종교의 신봉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전통을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문제는 아시아 교회 뿐 아니라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의 기독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교회들의 선교활동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선교 활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문장을 볼 때에 우리나라 또한 다른 아시아 교회와 마찬가지고 타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