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박종화의 금삼의 피 금삼의 피 줄거리 금삼의 피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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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종화의 금삼의 피
성종은 덕종의 둘째 아드님이시니, 열 세 살 때에 왕위에 오르셨다. 운명이 기구한 가엾은 어린 임금 단종의 삼촌으로, 단종을 노산군으로 폐위시키고 왕위에 그대로 오른 세조의 손자시다. 성종은 열 여덟 살 되시던 해 차차 성에 눈을 떠 왕의 흥미는 아릿다운 궁녀들 틈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중에 한 사람 지밀 상궁 중에 가장 나이 어리고 어여쁜 윤씨.
왕의 눈은 자주 이 윤씨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윤씨와 침소에 함께 든 이튿날 왕은 왕대비께 품하고 교지를 내려 윤씨로 숙의를 삼으시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씨가 연산(융)을 낳고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성종이 아름다운 정씨를 사랑하게 되자, 윤씨는 질투심과 함께 이 거만한 정씨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윤비는 친잠례에 나오지 않은 정씨를 호출하여 엄나무가지를 지워 하룻밤을 혹형을 가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정씨는 점장이 이판수와 의논하여 부적을 만들어 동궁(연산군)을 병들게 하였다. 이 사실을 목도한 윤비는 정씨를 당장 해치려 했으나 워낙 성종의 총애가 각별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정씨의 화상을 그려 활로 쏘고 굿을 하다가 성종에게 발각된다. 이 때문에 성종은 격분해서 폐위까지 거론하게 되지만 내신의 간언으로 무마된다. 다시 훗날 말다툼 끝에 윤비는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게 되어 정씨 일파의 극론에 몰려 폐위되고 낙향되었다가 사약까지 받게 된다.
동궁이 내내 탈없이 자라나거든 부디부디 이 수건을 전해서 주오, 철천의 이 원한을 씻겨 주오.
윤씨의 피눈물을 받은 손수건은 신씨(윤씨의 어머니)에게 전해졌고 뒷날 동궁이 자라 그 생생한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혹심한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죄인의 아들, 어머니 없는 외로운 자식이란 생각이 그의 성격에 큰 자극을 준 것이다. 성종의 뒤를 이은 연산은 무엇보다도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를 다시 복위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자기 친모를 서민의 무덤 속에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왕 대비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지만, 그 뜻은 관철되어 묘를 이장하고 회묘라 이름 했다. 연산은 거기에 거둥하며 친제를 지내겠다고 했는데, 대비와 대신들의 강력한 제지를 받게 된다. 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내전으로 돌아간 연산은 그 때부터 술만 마시고 방탕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궁중 뜰안에서 사슴을 활로 쓰러뜨렸다. 대왕 대비가 극진히 사랑하는 짐승을 죽인 것은 대왕 대비에 대해 쌓인 울분 때문이란 것을 안 사람들은 모두 전전 긍긍하게 되었다. 연산이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감돌게 되었다. 드디어 연산 4년 무오 7월에 일대 사건이 터졌다. 사국을 차리고 성종 대왕의 실록을 꾸미게 되었을 때 설록청 당상으로 있던 이극돈은 세조의 비행을 사실대로 적은 사초를 발견했다. 그는 무령군 유자광 등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고 연산에게까지 직소하게 된다. 격노한 연산은 당시의 실록청 사관이었던 김일손은 물론이요 권 경우, 이목, 허반, 강겸 등의 선비들을 능지처참하거나 참수의 형을 주고 그 밖의 관련자들에게 태형, 귀양 등의 벌을 내린다. 이 피비린내 나는 대참사가 이른바 무오사화인데, 이것이 게기가 되어 간신배들의 횡포는 극악해졌고 연산은 연일 황음 방탕하게 되니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지고 뜻있는 선비들의 비판도 비등했다. 마침내 군부의 실력자 박원종 일파의 모반이 일어났다. 연산 13년 병인 9월 초하룻날 밤 술시에 주동 인물들이 회동하고 훈련원의 포성을 신호로 박원종의 군대가 일제히 거사해서, 연산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렸다. 새로 왕위에 오르게 된 중종(진성대군)은 조칙을 내려 죄인을 대사하고 전중전 신씨는 정청궁으로 내보내며 또 많은 사람들을 처참 적몰하고 전왕은 강봉하여 연산군으로 부르고 교동에 안치시킨다.
폭군 연산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금삼의 피]는 우리 나라 신문소설로서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 연산군이 자기의 생모인 윤씨를 복위시키고자 일으킨 갑자사화(1504,연산군 10)를 작품화 시킨 것이다. 이미 폭군 연산이란 제명으로 영화화되어 널리 소개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연산을 하나의 광인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연산의 횡포적인 망발은 비명에 죽은 어머니의 비참한 최후를 알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적 이면에 비친 인간성을 생생하게 추구해 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산군하면 폭군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산군하면 광해군과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였으니 말이다. 이번에 금삼의 피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생각이 바뀌었다. 연산군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씨가 사주하여 연산군 자신도 어린 나이에 위중한 병을 앓고 자기의 친모 폐비 윤씨도 사약을 받고 죽었으니 그 원통함이야 오죽하랴. 더군다나 효성심이 깊은 연산군 이었으니 더욱 원통하였을 것이다. 그 원통한 마음이야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폐비 윤씨사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수단이 악랄했던 것은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일국의 왕이라는 자가 원한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 일 처리를 한 것은 누가 보아도 잘못 되었다 할 것이다. 연산군의 숙부 제안대군과 연산이 술자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제안대군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때를 잘못 탔구나! 연산이 날 때가 아니로구나, 몇 십년 전에만 낳더면 할아버지 세조의 업적은 넉넉히 하는 것을!연산의 뜨거운 정열, 호방한 기상은 한 나라를 일으켜 놓은 제왕의 기질에 합당하다.
그러나 보세 하는 임금은 이래서는 못쓴다. 먼저 제자리에 만족하고 이만하면 족하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연산이 때를 잘못 타고 난 듯 싶다. 가뜩이나 정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연산이 폐비 윤씨의 일을 도화선으로 폭군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 성종같이 색을 밝히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 여염집 아낙까지도 얼굴만 반반하다하면 끌고 오니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해야 했다.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임금으로서의 책무는 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은 행하는 임금이었다.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 없고 하루가 멀다하고 잔치를 벌이니 금세 국고가 동이 나고 나라 살림이 피폐해졌다. 임금이 아니라 단순한 평민이었다면 별 문제가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주색잡기에만 정신이 빠져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리 없다. 그래서 결국 신하에 의해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연산군이 하는 일들을 보면 똑똑하고 영특하기는 하나 현명한 사람은 아닌 듯 싶다.
머리는 좋고 영악하나 현명한 일 처리를 못한다고나 할까?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폐비 윤씨의 일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연산은 인내심이나 자제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색을 밝히기로서니 유부녀까지 범하고 그 남편 되는 이는 죽이고 하였으니 말이다. 결국은 스스로의 파멸을 스스로 자처한 꼴이다. 의무가 뒷받침되지 않은 자유는 맹종일 뿐이다. 연산은 임금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원한에 사로잡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주색잡기에 빠져 결국은 후세에 폭군이라는 오명을 낳고 말았다. 연산군을 보며 어느 것에 집착하는 것, 특히 섹스에 집착하는 것처럼 추해 보이는 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일이든 적당한 선을 넘어서 한쪽으로 치우치고 집착을 하게 되면 추해지고 문제가 생기게 된다. 연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본능에 따라 행동하여 폭군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연산을 보며 욕망을 억제하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에 따라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구도 때와 장소, 주어진 여건에 따라 그런 욕구를 억제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고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연산군은 자기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쾌락만을 쫓으며 살아간 결과 수많은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 자신도 쫓겨나고 폭군의 오명을 남기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러한 연산군의 행실을 보고 우리는 연산군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생각의 제일 큰 변화는 연산군이 단순히 폭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불쌍한 자식이요, 시대를 잘못 타고난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산군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알 게 된 것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커다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왜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폐비 윤씨의 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귀양 보냈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들 한다. 이긴 사람이 역사를 쓰기 때문에 패자에 대해서 나쁘게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여태까지 단순히 연산군을 폭군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연산군에게도 좋은 점이 있었고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바램은 단순히 연산군을 폭군으로만 보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연산군은 폭군, 이런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깨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보고서 때문이긴 하지만 간만에 이런 역사소설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강의에서도 많은 것을 익히고 배우며 느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