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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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처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는 소설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교수님께서 창의성을 가장 많이 보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창의성을 꼽을 정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그런데 내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그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은 것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냈을 때 나 스스로가 정말 대견하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알고 보니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고등학교에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나는 원래 또래 친구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어왔고, 그만큼 책에 대한 욕심도 많았었다. 그런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는 순간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 소설은 너무 난해했고 어려웠다. 딱히 어려운 단어가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내용도 아니었으며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어려웠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소설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소설을 바꾸려고 한 순간 그때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냥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기로 정했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왜 그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흔히 수업시간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고 가르치는 전개 방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래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었고, 그것이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읽으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사실 지금도 읽기에 가볍지는 않았으니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첫 단락의 첫 글자를 소제목으로 사용한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다가 소설 중반부쯤 되어 깨달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잦은 쉼표의 사용으로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서술 방법도 그랬다. 그의 창의성이 정말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소설은 작가의 인생을 반영한다는 말씀과 ‘구보’가 저자인 박태원의 호인 것을 생각하여 구보를 저자인 박태원이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래서인지 구보가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정말 현실에 나의 곁에 있을 법한 사람, 아니면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까지 하게 되었다. 소설 속 구보 씨는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탄다. 책에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그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힘을 겨루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겨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을 읽고 나는 나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과잉보호 아래에서 자랐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으면 사랑에 무심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나의 부모님은 넘치는 사랑을 나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하셨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애정 결핍증 비슷한 것이 생겼다. 오히려 더 사랑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하자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사랑에 굶주려있었다.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이 무엇인지 일찍부터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고, 항상 사랑이 부족하고 거기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자 스스로를 고독 속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고독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남자친구가 없었기에 이성에게서 받을 수 있는 사랑도 부족했고 친구들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나에게 주지 않았기에 동성에게서 받을 수 있는 사랑도 부족했다. 구보 씨가 바로 나의 이런 모습과 똑같은 것 같다. 그는 결혼하지 못했기에 이성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도 부족할 뿐 더러 벗이 없었기에 동성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정처 없이 홀로 길을 걷고, 아무나 생각나는 벗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글로 표현된 문장을 넘어서 마음으로 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실제 박태원의 모습이었다면, 정말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을 정도로 나와 그는 닮은 모습이었다.
또, 구보 씨는 아침에 길을 나설 때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은 후 뒤늦게 후회한다. 이것도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과 똑같다. 나는 항상 들려오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너무나도 싫었고, 어머니와 아침에 다툴 때면 문을 나설 때 어머니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달려 나오곤 했다. 하지만 뒤늦게 혼자 슬퍼하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 하면서 가슴이 아팠고, 딸이면서 먼저 애교 부리고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하고는 했다. 구보 씨도 역시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문 밖을 나오면서 일찍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네’하고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뉘우친다. 책에 ‘자식을 자랑할 때, 어머니는 얼마든지 뻔뻔스러울 수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어머니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깝고 자랑스러운 것이 자식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는 문장이었으며 멀리 진주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뭉클했다. 타지에 있는 딸이 걱정되어 전화로 한 말씀 하시는 나의 어머니의 마음과 결혼하지 못한 아들이 안쓰러워 방에 들어와 한 마디 하시는 구보 씨의 어머니의 마음이 다를 바가 있을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게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구보 씨가 걸었던 길을 따라 가기 위해 나는 처음 걷는 서울 길이였지만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걷기로 했다. 걷는 동안 책에 나왔던 지명이나 건물의 이름이 보여 반갑기도 했고 공사 중인 숭례문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종로타워, 청계천, 종로사거리, 명동, 한국은행, 숭례문, 서울역을 차례로 걸으면서했던 가장 큰 생각은 구보 씨는 날씬한 체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약간 헤매긴 했지만 그 길은 너무나도 길었다. 그 길을 매일 매일 걸었다면 살이 빠지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매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 길을 걸었다는 구보 씨의 고독의 크기가 느껴져 안쓰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 화신 백화점, 숭례문, 조선은행, 경성역 등 책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건물들을 보면서 과거에 있다가 현재로 온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보는 화신 백화점에서 전차를 타는데 목적지가 없이 전철을 탄다. 그 모습에서 예전에 한 때 버스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종점까지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의 내 모습 역시 구보의 모습과 비슷했던 것 같다. 비가 와서 괜히 울적해졌었는데 그냥 버스가 보이 길래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탔고, 창밖을 보면서 무수한 생각을 했었다. 버스 안, 전철 안 이라는 장소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는 곳인 종점에서 나는 뭔가 새로워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구보는 전철 안에서 예전에 선 자리에서 만났던 여자를 보게 된다. 그는 그 여자가 자신을 보았을까,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생각만 하다가 그 여자를 놓치게 된다. 내가 여자였으면 진짜 답답했을 것 같다. 그 여자가 예전에 선을 봤을 때 구보 쪽에서 반응이 오길 기다렸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여자도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그때도 적극적으로 표현을 못해서 놓쳐놓고 또 한 번 바보같이 여자를 놓치고 만다. 그 시대에, 여자가 먼저 관심의 표현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남자들은 표현을 두려워 하는지 모르겠다. 내 친구 중에 한 명도 진짜 청순한 여자가 생겼지만 표현도 못하고 질질 끌다가 놓쳐버리고 그러던데 앞으로 내가 만날 남자들은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가장 그 시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경성역 부분이다. 그는 고독을 쫓으려 사람이 많은 경성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진짜 고독은 그 곳에 있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할 뿐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고 병자 앞이라고 과일이 떨어졌는데도 줍지 않는다. 차갑고 냉정한 도시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물질 만능 주의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곳에는 황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는 그 시대를 ‘황금광 시대’라고 표현한다. 시인, 문인들조차 황금을 찾아 떠나고 순진한 처녀가 돈을 벌기 위해 여급이 되어버린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국민을 위해 발로 뛰어야 할 정치인들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속속들이 잡혀가고, 순수 지식을 향해 반짝거려야 할 학생들의 눈이 오직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길로만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고칠 방법이 없는 문제들이다. 그리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나타나는 현재와 비슷한 또 다른 문제로는 미혼모와 사생아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이 내용을 크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구보의 벗 중에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있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그 여자는 임신을 했고, 그 사실을 안 남자는 떠났다.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남자를 찾아 갔으나 그 남자는 이미 가정이 있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왜 저질렀을까. 죄도 없는 그 아이는 그 후로 애비 없는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으면서 커야 했을 것이다. 지금 1분 30초마다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낙태율이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고 낙태하지 못한 미혼모들이 낳은 사생아들이 길거리 곳곳에 버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