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 작가 연구 - 한국문학의 이해 - 나혜석을 찾아 수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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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기 - 작가 연구 - 한국문학의 이해 - 나혜석을 찾아 수원을 가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나혜석을 찾아 수원을 가다
A 들어가는 말
- 왜 나혜석인가.
B - 나혜석의 생애
C. 작품 속에 드러난 가치관과 여성의식
-1. 경희
-2. 인형의 가(家)
D. 맺음말
F. 참고자료
A 들어가는 말
- 왜 나혜석인가.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어디까지 왔는가. 여성의 삶이 과거보다 훨씬 진보해 온 것은 사실이다. 물론 남녀관계를 대결구도의 상황으로 맞닥뜨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직까지 지구의 반인 남성과 반인 여성을 힘의 분배 차원에서 본다면 갈 길은 먼 듯 보이기도 한다.
요즘 남학생들 사이에서 역차별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알파걸이란 신조어의 탄생에서 보듯 모든 면에서 우월한 능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찾아가는 여자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말하게 된다.
1920년대 전후 근대화의 시기를 거치던 시간의 여성의 삶은 어땠을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며 낯선 유학생 출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여성 문학 작가 등으로 살아간 식민지 조선의 한 여인을 통해 당시 일반적인 유교적 관습과 맞서 싸워야 했던 여성들의 해방의식, 신여성으로서의 삶이 궁금해졌다.
B -1. 나혜석의 생애
나혜석. 그녀는 누구인가.
그냥 쓸쓸히 묻힐 듯 대중들에게 존재감이 미약했던 그녀가 새로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 대 들어서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수년 전 나는 「인형의 家」라는 시를 우연히 접하고는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모작을 했구나 비웃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여성사에 큰 새김을 했건만 그는 왜 대중에게 인식되지 못했을까,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왜 극명하게 양분될까.
나혜석은 1896년 수원 개명관료의 딸로 태어나서 1949년 행려병자로 사망하기까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다. 수원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최우등졸업을 할 만큼 명석한 두되를 가졌으며 특히, 수학은 ‘교사로 하여금 그 민첩한 재주를 놀라게 한 일이 많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오빠 나경석이 아버지를 설득하여 본격적 미술공부를 위해 1913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18년 동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한다. 17살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에 간 나혜석은 동경에서의 문화체험, 일본여성들의 해방의식에 자극을 받았으며 조선여자에게도 의식개혁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아 계몽적 논설로서 그것을 알리고자 했다.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대단한 이름과는 달리 그림에 앞서 「경희」(1918,3)를 발표한 것에서 그가 무엇을 보여주고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동경유학은 나혜석의 생각,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인생이 결정된 중요한 시기였다. 이곳에서 서구사상, 일본의 신여성운동을 접했으며, 유화를 배웠고 글을 썼다. 당대 최고의 조선 청년 지식인들을 만났고 그중에서도 빛나는 인물 최승구와 사랑과 예술을 논했으며 후에 남편이 될 김우영도 만나게 되니 나혜석에게 일본은 인생 최고의 의미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느낀 일본 유학 후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와 그림과 산문에 비해 문학 작품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1937년 까지 소설 6편, 시 6편, 희곡 한 편을 틈틈이 발표함으로써 여성작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특히 1920년대 전후 「경희」 「인형의 家」 「노라」에는 헨릭 입센 ,엘렌케이의 담론들이 수용되어 있다. 작품을 살펴보면 입센과 엘렌케이 사상이 1920년대 전후로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