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성 선생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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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화성 선생님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화성 선생님에 대하여
박화성 선생님에 대하여
1. 박화성 약력
1904. 4월 16일(음) 박운서와 김운선의 막내딸로 목포에서 출생
1915.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 졸업
1918. 숙명여고보 졸업, 천안과 아산의 보통학교에서 교편 잡음
1922. 영광중학교 교사로 부임. 조운(曺雲) 등 文友들과 문학수업
1925. 단편 가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지에 게재- 문단에 등단
1926. 숙명여고보 신학년제 4년 졸업, 일본여자대학 영문학부 입학
1929. 동대학 영문학부 3년 수료, 단편 발표
1932. 한국여성 최초의 장편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간행
1933. 이후 중편 , 장편 , 단편 등의
발표 후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항거하여 각필
1947. 첫 단편집 간행
1955. (1955)을 시작으로 (1956), (1957),
(1958) 등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장편시대의 막을 열었음
1958. 목포시 문화상 수상
1960. 등의 장편을 연재
1961. 이화여자대학교 제정 문학선구 공로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피임
1962. 장편발표
1963. 국제 P.E.M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피임. 장편 연재
1964. 회갑기념으로 간행
1965. 한국여류문인회 초대 회장에 선임, 자유중국 부인작가협회 초청으로 대만 방문
1966. 한국예술원 회원에 선임,
뉴욕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세계연차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
단편 으로 제3회 한국문학상 수상
1968. 한국친화회(韓國親和會) 초청으로 일본에서 문학강연회 좌담회를 가짐,
제3단편집 발표
1970. 제15회 예술원상 수상
1974.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포장,
고희 기념으로 수상집 간행
1977. 제4단편집 간행
1984. 제24회 3ㆍ1 문화상 수상 이후 등 단편을 발표.
1988. 1월 30일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 집필하시다가 돌아가심.
2. 박화성 생애
개화기에 목포에서 태어난 한국문학의 선구자 소영 박화성 선생은 개척자의 생애가 그러하듯, 외롭고 어려운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정진으로 우리 문학사에 우뚝 선 선구자요, 선각자였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15세에 소학교 선생으로 교단에 선 것을 비롯하여, 일본 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여성이었으며, 우리문단에 등장한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 작가였고, 또한 장편소설을 집필한 최초의 여류작가로 줄곧 선구적 길을 걸었다. 또한 박화성 선생의 문학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괴로움과 외로움을 일제(日帝)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승화시켜 나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25년 문단에 등장한 이후 60여년의 세월을 작가생활을 하면서 한국문단의 대모(大母)로 칭송 받으며 남긴 수많은 역작과 그의 족적은 우리가 지키고 기려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2. 박화성의 작품세계 - 3기로 나누어 살펴보기
그의 소설연구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단편소설에 관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최일수, 서정자, 이명재 교수 등은 그와 같은 한계를 뛰어 넘어 박화성 소설문학의 60년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의 작품 활동 기간은 주로 1기와 2기로 끝나고 1960년대 중반부터 그는 문단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의 뛰어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추석전야, 하수도 공사, 비탈, 논 갈 때, 홍수전후, 한귀, 불가사리, 고향 없는 사람들, 춘소, 중긋날은 모두 일제강점기 때의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