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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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읽고
어느 햇살 좋은 날, 나는 두 살 터울 인 우리언니와 놀이터로 삼았던 동네 빌라 주차장에서 전래동화 방문 판매원을 만난 적이 있다. 언니는 7살, 나는 5살 쯤 이었던 것 같다.이런 하찮은 일은 기억하게 된 데에는 우리 언니와 나는 독서생활에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엄마께서는 내가 커가는 과정 속에서 항상 되풀이 하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 방문 판매원이 들고 있던 전래동화책이 우리 언니 눈에는 그 어떤 보석 보다 반짝이었을까, 우리언니는 그 방문 판매원의 치맛자락을 끌며 저만치 떨어져 있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엄마는 언니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지만 책을 사달라고 조르는 언니가 나름 대견스러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사주셨고 언니는 그 전래동화를 닳고 달 때 까지 읽었다. 그 후 우리 집 책장에 책이 채워져 갔다. 엄마는 사람들이 묻거든 지금도 말씀하신다. 언닌 방문판매원을 데리고 와서 책을 사달라고 할 정도로 책을 읽었다고. 난 언니를 닮아가지 않았고 책 읽는 언니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언니가 읽던 책장이 찢어지면 그 동화책 위에 종이를 데어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 뿐이었다. 우리 집 책장에 아직도 그 때의 전래동화 책이 꽂혀 있고, 나는 여전히 그 책장에 문조차 열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언니는 책벌레가 되어가고 덩달아 공부 까지 잘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항상 언니가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니 너도 언니를 따라 책을 읽으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언니와 나를 누가 비교하기 전에 ‘언니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 하며 내가 선수를 치곤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존심상하기도하고 언니는 항상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는 책도 잘 읽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를 닮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무작정 책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나에게 책읽기란 오른손에 쥐어진 종이의 두께가 왼손에 쥐어진 종이에 두께가 두꺼워져 감에 성취감을 느꼈다. 이 책에 쓰여 진 문구를 인용하여 말하자면 겉도는 책읽기를 하며 살아 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인거 같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내가 뛰어나 보이고 싶어 하는 나는 때 독서 왕 스티커를 많이 모으기 위해 책장 넘기기 식에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식에 책읽기는 더욱더 나에게 자리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에피소드이다. 그때 한참 ‘가시고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었다. 가시고기라는 책을 바탕으로 2부작 정도 되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엄마와 늦은 밤까지 그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울었다. 때 마침 학교에서 독후감쓰기 숙제가 있었다. 책을 읽기가 싫은 나는 마치 책을 읽고 나의 마음의 엄청난 감동을 받은 냥 드라마를 통해본 가시고기 감상문을 써서 제출 한 적이 있다. 여기 까지 이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내 감상문을 보신 담임선생님을 그 비겁하게 쓰여 진 독후감을 제주도에서 주최한 독후감모집에 응모를 하셨고, 덜컥 제주도 도지사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었다. 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지만, 그 찝찝한 마음으로 상을 받는 단상에 서있었던 사실을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비겁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이런 식으로의 나의 겉도는 책읽기는 나의 글쓰기를 겉돌게 하였고, 엄마의 공부법의 철학이었던 많은 책읽기와 성적에 정비례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책을 읽지 않아 나의 학습능력이 언니보다 떨어진다고 항상 생각하며 지냈다. 그것을 알면서도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이 재미가 없을뿐더러 공부를 해야 한다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하면서 책읽기는 나와 그렇게 멀어져 갔다. 고3때는 입시 스트레스에 찌들어 언젠가 한번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책을 읽었다. 그때 감독을 나오신 우리 담임선생님께 지금이 책을 읽을 때냐며 오히려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나의 자율적의지에 의해서 나의 마음을 다해 겉돌지 않는 책읽기를 할 수 있는 처음의 기회를 빼앗겼을 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온 교육과정에서 책읽기는 중요시 되어 지긴 한다. 학생이고 선생이고 책읽기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선생님 혹은 어른들이 책읽기에 목말라 하게 하지는 않았다. 우리 언니와 같이 스스로 책읽기가 좋아서 새벽 늦도록 책을 읽는 특이 케이스가 있지만 대부분의 나와 같은 학생들은 책읽기를 힘들어하고 글쓰기를 힘들어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라도 교과서 텍스트에 실린 글에서 벗어나 책을 읽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토론하는 그런 수업을 일주일에 한번만 이라도 가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수업이 반강제성이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수동적 책읽기에서 능동적 책읽기로 변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러한 기회라도 학생들에게 주어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컴퓨터, 스마트폰, 텔레비전에 노출되어있는 아이들에겐 책 읽기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빈약한 책읽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나의 생각과 지금의 삶을 겉돌게 하였다. 요즘은 학교에서 과제니, 토론이니 해서 예전보다 책을 읽을 기회는 많이 생겨났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간에 예전처럼 책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과거의 책읽기 시간보다는 나은 책읽기 삶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책읽기 상태는 최소한의 상태이다. 나는 나의 줏대를 가지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일인으로서 이제껏 수많은 책의 저자와 대화를 즐기지 못함에 화가 난다. 책은 나의 은연중에 항상 완벽한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 책의 지식을 외우거나 한 치에 의심 없이 받아 들여져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특히 내가 많이 잃어야 할 사회과학류에 책은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달리 생각해야 할 듯하다. 책을 읽는 것은 저자와 내가 대화를 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어떠한 지식의 완성품이 아니다. ‘책을 읽을 때는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너무 많이 들어온 말이라 이제는 나에게는 어떠한 새로운 말도, 자극하는 말도 아니다. 내가 생각해 보건데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어떻게 하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을까.항상 어떻게든 꼬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아니었다. 비판적 사고는 나의 줏대 즉, 주장을 세우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은 작가와 책이라는 다리를 통해 작가와 진정한 대화를 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책읽기이며, 자발적인 책 읽기였던 것이다. 언제든지 작가의 생각에 의해서 쓰인 글은 누군가에 의해서 고쳐질 수 있는 것이며, 작가든 고쳐 쓰기를 한 사람이건 항상 옳지만은 않은 것이다. 책읽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보니 훨씬 마음이 편해 졌다. 책은 내가 읽어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와 대화중인 것이다. 당분간 자리 잡히지 않은 작가와의 대화가 낯설고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득 하다.
글 잘 쓰는 지식인이 되기. 웃기지만 나의 로망이자 나의 대학생활 동안 이루어 내고 싶은 일중에 한가지이다. 도리어 생각해보면 내가 겉도는 책읽기와 겉도는 글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는 책을 읽어도 멋지게 쓰여 진 문구를 보며 ‘어떻게 이런 글을 표현 해냈을까.’생각하며 표시를 해둔다거나 언젠가 나도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써먹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글을 찾아 읽었고 그러한 글을 따라 쓰려고 노력했다. 많은 작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남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글이나 글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인데 나는 이제껏 꾀를 부리려고 했던 것이다. 책읽기, 즉 작가와의 대화가 잘 이루어 졌을 때 나만의 글, 나만의 표현력이 생길 것이라 생각 한다. 당분간 멋 부리지 않고 나의 말을 솔직 담백하게 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조금 서툴고 어색할 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어떤 누가 쓴 글을 따라 쓴 것도 아니고 멋있게 보이려는 과장됨도 없는 순수한 내가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이번 과제를 통해서 22년 동안 책과 어떻게 살아 왔는지 성찰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떠한 과제보다 생산적인 생각의 시간을 보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없었다면 거짓말다. 하지만 가장 크게 내가 얻은 것은 내가 항상 고민하던 나의 겉도는 글 읽기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남들은 다들 잘하고 있을 것 같기에 물어보기에 멋쩍은 것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간지러웠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 준 기분이다. 언젠가는 한번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항상 미루고 미루어질 시간 이었을 것이다. 나의 앞으로의 글 읽기가 이 시간 이후로 즐거울 것이라 믿는다. 겉도는 글 읽기가 바로 잡 힐 즈음에는 겉도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삶이 바로 잡혀 갈 것이다. 또한 나의 삶과 특히 내가 읽어온 사회과학군의 책의 지식의 괴리가 너무 커서 나와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항상 받곤 했다. 그래서 어려웠고 나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괴리감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고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쓸 것이다. 그때마나 책의 작가와 대화한 내용과 나의 생각을 쓸 것이다. 그 글과 나의 생활이 따로 노는 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인데 글 속에 나와 인간세상의 나로 분리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