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역과 이향군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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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후방역과 이향군 `도화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작가소개
Ⅱ. 줄거리
Ⅲ. 작품 해설
Ⅳ. 결말비교-도화선과 양축
Ⅴ. 다른 희곡 작품의 여주인공캐릭터와 이향군 비교
본문내용
Ⅰ. 작가소개

공상임(孔尙任 kǒng shꐃng rèn)
자 : 빙지(聘之 pìn zhī) 또는 계중(季重 jì zhòng)
호 : 동당(東塘 dōng tꐁng) 또는 안당(岸堂 ꐃn tꐁng)
산동 곡부(曲阜) 출신으로 공자의 64대 손.
19세에 수재가 되었으나 번번이 중앙 시험에 떨어져 전답을 팔아 국자감 학생 신분을 샀다. 그의 나이 36세에 강희 황제가 지방을 순찰하던 중 곡부에 들렀는데, 이 때 공상임은 황제에게 유가의 경전을 강연했고, 공림(孔林 : 孔씨 집안의 가족묘)을 안내했다. 이 일로 황제의 신임을 얻어 국자감 박사가 되었다. 그 때부터 관리 생활을 시작하여 얼마 후 양주(揚州) 지방에 배치되어 치수(治水)를 담당했다. 그곳에 근무하면서 공상임은 관가의 부패와 백성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했으며, 몇몇 명말 유민들과 사귀면서 명 왕조의 흥망에 관한 소재들을 다양하게 수집하였다.
북경으로 돌아온 후 몇몇 한직을 전전하였는데, 골동품과 고서들을 수집하며 감상하는 일로 소일하였다. 가장 흥미를 가지고 매달린 일은 극본 창작이었는데, 10여 년 동안 세 번이나 원고를 고쳐가며 그 나이 쉰 살에 완성한 『도화선(桃花扇)』이 대표작이다. 『도화선』은 북경 일대를 뒤흔들어 왕족과 대신들까지 극본을 베꼈으며, 무대에서는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도화선』을 공연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 명나라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너무 짙게 배어 있어서 청 정부는 공상임과 『도화선』을 그냥 둘 수 없어, 그를 관직에서 내쫓았고 공상임은 산동의 고향집으로 내려가 일흔 살에 석문산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