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

 1  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1
 2  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2
 3  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3
 4  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대화의 기술 결혼 이데올로기의 해체 - 오만과 편견 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해체
-『오만과 편견』『아내가 결혼했다』를 중심으로
*오만과 편견
당시 사회는 여성들의 상속권이 없었다. 때문에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서 결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녀들에게 로맨틱 러브란, 철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결혼하지 않을 경우 친족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거나 가정교사가 되어 남의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 소설 안에서 베넷가의 다섯 딸들은 모두 결혼할 남성을 찾기 위해 치장하고 사교모임에 간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그 소설 속 다른 여인들과 다른 지점이 있다. 언니와 동생들 모두가 ‘결혼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반면 엘리자베스는 ‘사랑’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녀는 ‘난 사랑없이 결혼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며 인간적인 소통을 갈구한다. 어떻게 엘리자베스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까. 엘리자베스가 그 두가지 모두를 성취하는 데에는 다아시의 상황이 한 몫하고 있다. 다아시와 빙글리는 로맨틱 러브를 가장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선 그들에게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넓은 토지와 재산이 있으며 결혼을 계급 상승과 유지의 목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없다. 이들에게는 곧 시집가야할 여동생과 깐깐한 친척 할머니 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여성을 ‘간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베넷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촌이 등장하여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당시 남성들이 어떤 위치에서 결혼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다아시와 빙글리는 엘리자베스와 그의 언니에게 사랑이나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소통이 밑바탕이 되는 끈끈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와 처음부터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들이 결혼을 목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속물성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서로 오해하고 그 오해를 풀어나가며 사랑에 대한 상대방의 마음을 따지고 든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역시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와는 달리 엘리자베스에게 결혼 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조카가 나타나 엘리자베스에게 청혼 할 때 엄마는 무조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아버지는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 했을 때조차 아버지는 이렇게 묻는다. ‘그와 결혼하는 것이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냐?’ 라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여러 인물들과 인간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상이 출현하기 위한 전제는 가부장 사회에서의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은 로맨틱 러브의 범주 안에 있을까? 그들은 첫 눈에 호감을 느끼지만 곧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질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시간 천천히 서로를 탐색한다. 과연 저 사람이 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로맨틱한 사랑의 전형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낭만성은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여성들의 판타지를 적극 수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당시 여성들의 롤모델 이었을 것이다. 무조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엘리자베스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상대를 만났을 뿐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겉만 번지르르한 위드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로맨틱한 가치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아시라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매우 현대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문제적일 수 있는 인물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리디아 였다. 그녀는 첫 눈에 반한 남자와 도망친다. 결혼도 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남자와 도망간 리디아의 이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형성과 일종의 탈주본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돌아와(가족에 의해)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착한다. 리디아의 탈주는 오로지 그녀의 마음에 의거한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녀는 무작정 도망치고 돌연 붙들려와 아무거리낌 없이 결혼한다. 게다가 위드컴이라는 못된 남자를 만나 앞으로 부모나 형제들에게 빌붙어야 할 처지에 있다. 결국 결혼을 해서도 집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리디아는 현대의 캥거루족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취직을 해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
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을 읽었거나 영화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돌아와서 이런 의문을 가진다. 정말 복혼이 가능할까?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만약 내 아내가 주인아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내 남편이 주인아와 같은 발언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작품은 주인아라는 여성과 두 남성의 결혼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문제적인 내용이다. 물론 두 번씩 결혼을 하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것은 전자의 관계가 온전히(제도적으로) 끝났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문제적인 여자 인아는 제도적으로 두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물론 인아는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인아가 자신의 욕망을 다른 두 남자에게 어떻게 관철시키는가 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작품안의 인아는 사회가 자신을 욕망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이 관계하는 두 남성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작품의 초점은 덕훈에게 맞춰져 있는데 놀랍게도 덕훈은 인아의 욕망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가 미쳤지라는 체념을 바탕으로 아내의 또 다른 남편인 재경과 함께 급기야 스페인으로 날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덕훈과 재경의 행동에 감정이입 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유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대일의 온전한 관계는 결혼 전 연애에서도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연애에서 두 사람을 동시에 사귀다가 상대방에게 ‘들켰을’ 경우 두 사람을 동시에 사귄 그 사람은 상대방에게 비난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난 받는다. 연애에서도 이러니 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 연애는 비난으로 끝나지만 결혼은 법적으로 책임을 묻고 있다. 간통죄의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덕훈의 입장에서 인아는 간통죄로 고소해도 속이 안풀릴 여자다. 많은 남성들이 덕훈의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비난하는 것은 결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독점의 시스템이며 우리는 여기에 사랑이라는 신화를 부여하면서 관계의 온전함에서 비롯되는 낭만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남성들은 인아를 옹호했다. ‘인아 같은 여자라면….’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 여자들은 인아의 캐릭터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했다. 그것은 작품이 현실적인 디테일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말부부로서의 인아는 가사 일에 너무나 완벽하고 두 시댁을 오가며 대소사를 치르고 급기야 남편의 성적욕망 마저도 교묘하게 충족시켜 준다. 여자들은 인아를 보면서 허탈감과 상실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인아는 현실적으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직접 현실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느낌이 덜 한 것이다. 인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내면과 욕구에 충실한 여자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요구도 하고 있지 않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재경의 식구들과 돌잔치를 치르며 덕훈의 폭로에 도망쳐 버리는 행위는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정말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처음에 던져졌던 급진적인 문제들은 인아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현실과 맥락을 같이 하지 못한 채 하나의 판타지로 남아버린다. 엘리자베스는 그 당시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롤모델의 역할이 가능한 반면 인아는 거기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아는 조금 다른 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인아는 우리에게 왜 결혼이 일대 일의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고 왜 아이를 혈연을 바탕으로 양육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인아가 출산한 아이의 아버지를 두고 집요하게 캐묻는 덕훈에게 인아는 어떤 대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인아가 욕망하는 가족의 형태는 조금 새로운 형태다. 결국 덕훈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인아의 욕망을 지켜주고자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욕망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 나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온전히 지켜줄 수 있을까. 의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식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는 꼭 현재처럼 유지되어야 하는지 질문하고 사랑이 일대일 쌍방 간의 관계인지 되묻는다.
* 두 작품은 어떻게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있는가.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