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성 안토니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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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성 안토니의 생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독교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성 안토니의 생애
Ⅰ. 저자 및 배경 소개
1. 저자 소개
‘성 안토니의 생애’의 저자는 4C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년 경)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인으로 ‘정통 교리의 수호자’라고 알려져 왔다. 그는 295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사상, 문화, 상업적으로 번성한 곳이었다. 또한 이집트의 행정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중심지였고, 중요한 항구들이 있어서 로마와 아시아 등의 무역 중심지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역사’라는 보고에 따르면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신분이 높고 부유한 과부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알렉산더 주교를 찾아가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알렉산더는 아타나시우스를 양자로 받아들여 교육시켰으며, 부제품 부제(副祭) - 가톨릭에서 부제품(副祭品)을 받은 성직자. 사제(司祭)의 아래,
을 주고 자신의 비서를 삼는다. 아타나시우스의 일생은 일찍이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의 운명, 특히 주교단의 신학과 행정 일을 보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더 주교의 고문으로 325년에 열린 니케아 종교회의에 참석했으며, 3년 후에는 알렉산더 주교의 사망 후 그의 뒤를 이어 주교직을 맡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주교품을 받은 직후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 후 수도생활을 교회에 융합하기 위하여 관할 교구들을 시찰(330~334년)하였다. 그의 교회에 수도생활을 이끌어 들이려는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그는 몇 년 뒤 수도자들을 주교로 임명하였고, 이에 수도원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이와 같은 관계는 주교가 되기 전부터 지속되어, 아타나시우스가 도피할 때에 도피처를 제공하기도 하며, 이들의 간청으로 “성 안토니의 생애”를 저술했다. 따라서 아타나시우스의 삶에 수도사들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남주원, - 2004년 감신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그러나 그는 아리우스 아리우스주의
신학논문총서 / 학술정보자료사 - 그리스도교가 공인(313년)된 후에 Arius에 의하여 야기된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논쟁을 그의 이름을 따라 아리우스 논쟁이라고 불렀다. 특별히 당시 신학적인 논쟁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강력한 주장은 "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조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를 교회에 받아들이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든 노력에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아타나시우스에게 대역죄(331/2년)와 살인죄(332/3년)를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들을 하였다. (이때 살해되었다던 아르세니우스 주교가 멜리티우스파에 숨어있는 것을 아타나시우스가 찾아냄으로써 수포로 돌아감.) 그의 반대자들은 그를 고소하였고, 황제가 소집한 두로(Tyre)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를 면직하고 추방한다. 그는 그 후 수차례의 추방과 복직을 반복하며, 아리우스파와의 정면 대결 속에 결국 승리를 거둔다. 파울 틸리히著, 송기득易
p135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위대한 반대자 아타나시우스는 이 물에에 대해서 구원이란 ‘우리가 신이 되기 위해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 한가지 조건을 바탕으로만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또한 ‘아들(그리스도)은 처음을 가지지 않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영원부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영원부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이 둘이 하나 같이 영원할때에만 로고스가 자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는 우리에게 영원성을 줄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p137 325년 6월 니케아 종교회에서 “....그리고 우리는 유일한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은.....아버지와 동질(하나인 실체, homoousios)인 분을 믿는다. .... 주께서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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