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참 의미로 다가가기 위하여, 대학 졸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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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의 참 의미로 다가가기 위하여
오빠를 좋아하는 싸움쟁이
나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오빠가 하나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참 좋았다. 어린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종종 엄마한테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고 조른다는데 나는 한 번도 동생타령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난 어려서부터 오빠가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오빠는 여느 다른 어린 남자아이들처럼 여동생보다는 또래 남자아이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오빠가 친구들과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거나 오빠 친구들의 여동생과 함께 놀곤 하였다.
어린 시절의 우리 오빠는 사람들을 참 좋아했고 특히나 동네 친구들을 퍽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서 함께 어울리곤 했는데 어린 시절에 똑 부러졌던 나는 그 광경을 자주 목격하면서 줄곧 참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만큼 똑 부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오빠들이 우리오빠한테 부당한 것을 요구할 때마다 쪼르르 달려가서 참견하곤 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또박또박 따지곤 해서 오빠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오빠들은 돌연 “너 자꾸 그러면 너희 오빠랑 안 논다~!”하곤 엄포를 놓았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무릎 꿇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오빠가 그 친구들에게 사정사정하게 되는 꼴이 되곤 했다. “네 동생이 자꾸 나한테 저러는데 우리들은 너랑 놀 수 없어.”라며 네 동생을 데려와 사과시키라는 것이었다. 지금생각해도 그렇게 했던 오빠들은 정말 비열했던 것 같다. 나는 죽어도 사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친구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던 우리 오빠는 친구들에게 나 대신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다시 그 오빠들이랑 어울리곤 했다. 그리곤 나와 오빠는 다시 사이가 나빠졌다. 매번 우리 남매가 다투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명치끝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만 같다.
오빠가 비열한 친구들이랑 왜 저렇게 놀려고 하는지 답답해서 몇 마디 하게 되면 오빠는 자존심 상해서 나한테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애들이 참 싫었다. 초등학교 때는 힘세다고 세치기 하는 아이, 덩치 크다고 괴롭히는 아이들 모두를 경멸했고 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명백히 옳은데도 불구하고 져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조그만 내 몸집으로는 상대도 안 되는 그 남자 아이들과 일 년에 한 번씩은 몸싸움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맞아서 아팠지만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침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 중에 얼굴이 정말로 예뻐서 별명이 ‘꽃님이’인 친구가 있었다. 학교에서 남학생들한테 인기도 많았고 같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나면 나와는 달리 항상 남자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집에 들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것이 전혀 부럽지 않았고 꽃님이처럼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고픈 마음이 한 조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친구들이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하거나 텔레비전에 나온 연예인들이 다들 한명씩은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이성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난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첼로
나는 다른 친구들이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는 동안 열심히 첼로를 배웠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방과 후 두 가지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것은 바로 피아노와 첼로였다. 처음 첼로를 배울 때는 개인 레슨을 신청하지 않고 아이들과 다 같이 레슨을 받는 단체 레슨을 신청했는데 그래서인지 진도가 느렸고 선생님께 참 많이 맞으면서 배웠다. 다 같이 단체로 레슨을 받고 있는데 나만 계속 시키시면서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나를 자주 때리셨다. 그리곤 개인 레슨을 받던 지현이라는 친구와 비교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레슨이 끝나면 친구들이 나에게 괜찮으냐고 자주 물었다. 하지만 나는 맞았다고 울어본 적이 없다. 내가 정말 못해서 혼난 것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한테 가서 ‘오늘 첼로학원에서 이러저러해서 나만 대표로 맞으면서 혼났어요.’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대수롭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개인 레슨을 받게 만들려는 선생님의 의도가 담긴 행동이었다. 물론 내가 잘 못해서였겠지만 내가 학원에서 혼난 일이 엄마 귀에 들어가면 속상하셔서 개인레슨을 시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수십 명의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혼내시고 개인 레슨을 받던 친구와 비교하셨던 것이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집으로 전화하셔서 엄마께 찬정일 개인레슨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고 나는 지현이처럼 한 번에 한 시간 씩 선생님과 단 둘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살던 부천시에서 콩쿨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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