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논쟁사] 1990년대 ‘개인구원’ ‘사회구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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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교회논쟁사] 1990년대 ‘개인구원’ ‘사회구원’ 논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교회논쟁사]
1990년대 ‘개인구원’ / ‘사회구원’ 논쟁
들어가며
인권 및 민주화 운동의 태동이라 불릴 수 있는 격동의 시대, 60년대부터 시작된 세속화 논쟁, 나아가 1990년대 ‘개인구원’, ‘사회구원’ 논쟁이 있기까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입장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입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토론 하고자 한다.
1. ‘개인구원’, ‘사회구원’ 논쟁의 배경
1960년대 초 한국 사회는 4.19와 5.16이라는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4.19혁명은 분단과 전쟁, 독재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구름을 뚫고 나온 한줄기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교회의 얼룩진 모습을 발견한 서울의 새문안교회 청년들은 교계의 정화를 촉구하였고, 감리교총리원 이사회는 부정선거에 가담한 교역자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성은 철저하지 못했고 교회 전반으로 확산되지도 않았다. 그러던 사이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한국기독교연합회는 이것을 “군사혁명”이라고 부르며 나라를 “공산침략에서 구출”하고 부정부패로부터 “재건하기 위한 부득이한 처사”라는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박정희가 1963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후 일본의 자본을 통해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국교 정상화를 서둘러 타결하려 했다. 광범위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1965년 6월 한일협정에 조인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교파를 초월한 구국기도회가 열려 굴욕적인 한일 협정 비준에 반대했지만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반대운동 자체는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은 교회의 비판적 사회참여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일협정 비준 반대운동 이후 교회의 정부 비판은 박정희 정권이 1969년 삼선개헌을 통하여 장기집권을 강행하려 할 때 절정에 달했다. 이에 김재준 함석헌 박형규 등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 지도자들은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에 참여하여 개헌반대운동에 앞장섰다. 반면 김윤찬 김준곤 김장환 등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은 김재준의 개헌반대 활동을 성직의 권위를 도용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1969년 삼선개헌을 둘러싸고 전개된 교계의 찬반논쟁은 교회가 정교분리를 표방하는 보수 세력과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진보 세력으로 확연히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의 등장 이후 교회에 생긴 큰 변화로서 1970년대 이후 교회의 양극화를 예고해 주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한국 기독교의 역사Ⅲ』,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9), pp.234~247
2. 세속화의 본질과 복음의 세속성을 둘러싼 시각
세속화(secularization)란 비종교화 혹은 종교의 사회적 소외현상을 가리킨다. 세속화에 대해 수많은 사회학적, 역사학적, 또는 신학적 정의들이 존재하는데, 래리 샤이너는 이러한 정의들을 5개의 범주로 요약하였다. 첫째는 종교의 사회적 감소(decline), 즉 교인의 감소를 의미한다. 둘째는 종교집단의 세상에 대한 융화(conformity), 즉 세상적 방식과 타협하는 것이다. 셋째는 세계의 비신성화(desacralization), 즉 하나님의 임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넷째는 종교의 사유화(privatization), 즉 신앙을 일상생활에서는 적용시키지 않고 단지 내면적이고 영적인 측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는 신앙내용과 행동방식의 종교적 영역에서 세속적 영역으로의 전이(transposition), 즉 신앙이나 윤리를 성경적 원리보다 과학적이고 세속적인 원리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발생하여 서구사회를 세속화시키고 이제는 서구화의 바람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세속화는 종교적 사회를 비종교적 사회로 변화시킨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종교적인 사회를 비종교적 사회로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반기독교적인 계몽주의가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신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계시중심에서 이성 중심으로, 교회중심에서 국가중심으로, 신학중심에서 과학중심으로, 정신중심에서 물질중심으로, 모든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기독교는 점차 사회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세속화는 초대교회의 중심이었던 소아시아가 이슬람의 침략으로, 그리고 한국 초대교회의 중심이었던 북한이 공산정권의 지배로 인해 교회가 급격히 몰락하고 소멸되게 만든 정치적 변화보다 더 강력하고 무서운 문화적 대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유럽교회의 몰락을 단순히 신앙적 열정의 부족이나 자유주의신학의 영향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무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세속화는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분석함으로서 그 대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정석, 「세속화의 본질」, 『미주 크리스챤 신문』, 2002.11.30.
기독교의 세속화론은 우리들에게 일종의 혼란을 가져왔다. 우리는 세상 풍속을 따라 이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이란 말을 미워하는데, 세속은 곧 타락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가 세상이란 말을 일정한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혼란의 원인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좋다고 말씀하신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 전체를 의미하며 이는 선한 세상을 이야기한다.(행17:24,롬1:20) 그러나 또 세상이라는 말로써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인류를 의미하고,(마13:22,요1:10,고전1:20 등) 세상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그리스도에게 적대하는 세력으로도 나타난다.(요일5:19,요7:7,15:19) 그러므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고 가르친다. (요일2:15) 그런데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이다.(요3:16) 이 현실적인 세속 사회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우리가 또한 그를 만날 장소로 믿는 여기에 오늘날 세속화론의 한 거점이 있다. 그 동안 기독교는 개인의 영혼구원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이웃에 대한 관심, 또는 그 영혼을 형성하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등한시 해 왔다. 오히려 회개와 신앙이란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탈을 결심하는 것으로 지도해 오고 있는 것이 종교였다. 종교생활의 영역을 거룩한 것으로 보고 세상생활을 속된 것으로 나누어 보는 기존의 구별법은 의미를 잃는다. 聖(성)은 높은 가치의 세계이기 때문에 종교가 추구하는 곳이고 俗(속)은 낮은 가치의 세계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곳이라는 낡은 이분법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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