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와 신 보수주의 대처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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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복지국가와 신 보수주의 대처리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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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복지국가와 신 보수주의 대처리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차
1. 복지국가의 형성, 발전 _ (p2~4)
(1) 노동당 집권 과정 _ (p2~3)
(2)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민보건서비스) 도입 _ (p3)
(3) 사회보험과 국민부조의 개혁 _ (p3~4)
2. 복지국가의 축소기, 대처리즘으로의 전환 _ (p4~10)
(1) 사회적 배경 _ (p4)
1) 보수당이 집권하게 된 배경
2) 대처리즘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
(2) 대처리즘과 복지개혁 _ (p5)
1) 대처리즘이란 무엇인가?
2) 대처의 복지개혁은 정권 3기에 본격화 되었다(1987-1990)
국민에 대한 복지의 의존성을 완전히 종식시키겠다고 하였다. 복지개혁기본방침
(3) 대처정부의 구체적 사회복지 개혁 _ (p5~8)
1) 민영화
2) 사회보장
3) 주택정책
4) 지역사회보호(community care)
5) 시민헌장(Citizens Charter)의 실현
(4) NHS의 개혁 _ (p8~9)
1) NHS 개혁이 제기된 배경
2) 개혁내용
(5) 결과 _ (p10)
3. 신자유주의와 제 3의 길(토니블레어) _ (p10~12)
복지국가와 신 보수주의 (대처리즘)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토니블레어)
1. 복지국가의 형성, 발전
영국의 복지국가 형성은 케인즈 경제학과 베버리지 사회계획의 기초 위에서 시작되었다.
2차대 전 종결이후 1945~75년까지를 복지국가 발전의 황금기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시기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점으로, 영국 복지국가체제의 기초가 된 케인즈-비버리지 모형의 제도적 접근이 이루어진 시기이다.(케인즈-베버리지 복지모형은 1930년대 서구사회가 경제불황으로 곤경에 처하여 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케인즈가 유효수요의 증진을 통한 고용확대를 꾀한 경제정책과, 1942년 베버리지의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대한 보고서에 기초를 둔 복지구조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초부터 빈곤예방이 강조되면서 사회보험의 체계와 기능이 도입되어 있었다. 1908년 무기여노령연금제도가 시행되었고, 1911년에는 국민보험, 국민건강보험과 실업보험이 시행되었다. 1차 대전은 국민생활에 관한 국가개입이라는 획기적 계기를 제공하였고, 1925년에는 미망인고아노령기여연금법이 시행되었다. 2차 대전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였고,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기대와 평등주의적 심리도 확산되었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는 보편적 국민보험체계를 의회에 건의하였고, 1944년 처칠(W. Churchill)의 전시 연립정부는 케인즈의 [완전고용에 관한 백서]를 기초로 완전고용 유지를 천명하였다.
복지국가가 형성되며 이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케인즈 경제학과 베버리지 보고서를 토대로 연장선상에서 발전시켰던 노동당 정부의 집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틀리가 이끈 노동당 정부는 1951년 총선에 패해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줄 때까지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6년 간 복지국가의 골격을 완성하게 되었다.
(1) 노동당 집권 과정
당시(1945년 6월) 총선은 전시 거국 내각 성립이후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선거였다. 이 선거에 대해 전 세계 언론들은 모두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압승을 예상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까운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의 요인은 계급 관계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자본과 노동 양대 계급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 앞에서 그간의 대립관계를 불식하고 협력적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전시 연립정부의 성립이 그것인데, 노동자 계급과 보수세력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여 국정을 공동 운영함으로써 상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상호 협력을 위해서는 일정한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게다가 노동운동 세력과 노동자 계급에 대한 중간계급의 의식도 크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을 수용하고 전쟁터에 나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후방에서 전쟁물자 생산에 주력하는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급진세력이 아니었으며, 노동자계급을 위한 복지제도의 확충은 전쟁의 희생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정당화되었으며, 보편주의적 복지체제가 구축되면 중간계급도 복지의 주요 수혜 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자유당이나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던 이들 중간계급은 장기간의 전쟁상황에 지쳐 보수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전 후의 새로운 "개인의 자유와 가족생활"을 염원했다. 그런 중간계급과의 복지동맹이 유효했다.
다시 말해서 애틀리의 복지국가는 노동자 계급의 힘의 증대/ 노동자 계급과 중간계급간의 복지동맹/자본의 복지국가에 대한 암묵적 수락의 결과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은 노동자 계급 태도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전의 대공항(1930년대)기에 엄청난 실업과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노조는 급진적 요구 대신 적절한 국유화, 완전고용, 복지정책의 확대 등 자본주의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을 요구하였고, 노동당 역시 사회 재분배를 통해 자본주의의 부정적 결과들을 완화시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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