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 국립 민속박물관을 다녀와서(한국인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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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민속] 국립 민속박물관을 다녀와서(한국인의 일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국립 민속박물관을 다녀와서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한국인의 일생
1. 출생
2. 관례
3. 혼례
4. 상례
5. 제례
Ⅲ. 맺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5월 25일 학교 학습동아리를 하러 가는 도중에 차일피일 미루던 한국민속의 이해 과제를 하기 위해서 안국역에 소재한 국립민속박물관에 들렀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얼굴은 빨갛게 익고 구슬땀을 흘렸다. 입구에 마을 신앙 공동체 신앙물인 돌탑. 장승. 솟대가 있고 효자각, 옛날 우리가 살던 동네 모습, 전차 등이 재현되어 있어 구경을 하면서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배가 고파 우선 간단한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을 먹으면서 땀을 식혔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로 중국 관람객들과 어린이들이 많아 호기심에 찬 눈으로 전시물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흐뭇했다.
박물관은 3군데 상설 전시관과 따로 기획 전시관이 있는데, 제1전시관은 한민족의 생활사, 제2전시관은 한국인의 일상, 제3전시관은 한국인의 일생이 전시되어 있고 기획 전시관은 앙드레김의 패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민속의 이해’를 배우고 나서 전시장을 관람하니까 이해도 잘 되고 흥미도 생겨 상세하게 관람을 했다. 전시물을 찍기도 했지만 내부라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고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찾아 쓰기로 했다.
관람한 내용 중에서 제3전시관에 있는 한국인의 일생 중에서 누구나 겪는 관혼상제에 대해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Ⅱ. 한국인의 일생
1. 출생
조선시대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이 사회적인 관습이기 때문에 아들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 집안에서나 간절하였다.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삼신할머니에게 자손번창子孫繁昌과 부귀다남富貴多男을 기원하며 건강한 남자아이의 출산을 기원하였다. 출산 후에는 대문에 금줄을 쳐 아이의 출생을 알리고 부정한 출입을 막았으며, 태를 태항아리나 깨끗한 곳에 묻거나 불에 태워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당시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므로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후에 백일잔치를 하여 비로소 축하하고, 1년 후에는 돌잔치를 하여 아이의 장래를 점쳤다.
가. 태몽
태몽은 아이가 태어날 조짐을 나타내는 꿈으로, 예부터 우리나라는 출산 전후의 꿈을 풀어서 아이의 성별이나 장래를 점쳤다. 큰 동물이나 식물은 남자아이, 선녀나 꽃, 비녀 등 여성스러운 상징물은 여자아이의 태몽으로 여겼다. 그리고 호랑이는 용맹스러운 장수, 학ㆍ용ㆍ봉황은 학식이나 벼슬이 높은 학자를 얻을 태몽으로 풀이하였다. 조선시대 대학자 이이(李珥, 1536~1584)도 신사임당이 강릉 오죽헌에서 용꿈을 꾸고 낳았다는 몽룡실(夢龍室) 일화가 전해진다.
나. 신방
신방은 혼례를 마친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방으로, 꽃과 새, 나비 그림〔花鳥圖, 花蝶圖〕병풍에 한 쌍의 원앙을 수놓은 원앙금침(鴛鴦衾枕)을 깔고, 나비촛대에는 화촉(華燭)을 밝혔다. 화조도나 화접도 병풍은 부부 화합을 뜻하며, 원앙금침은 한 쌍의 원앙처럼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살기를 염원한 뜻이 담겨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집안의 가계 계승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신부는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서 기자도끼〔祈子斧〕를 차거나, 열쇠패와 수저집 등에 ‘부귀다남(富貴多男)’, ‘자손번창(子孫繁昌)’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