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내포지방의 사상과 종교 - 지리적 환경, 성리학의 학파와 특징, 천주교의 동향, 감리교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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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내포지방의 사상과 종교 - 지리적 환경, 성리학의 학파와 특징, 천주교의 동향, 감리교의 동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조선후기 내포지방의 사상과 종교
1. 머리말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내포는 가야산 앞 뒤의 10고을인 경성해미태안서산면천 당진홍주덕산예산신창 등을 지칭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이중환의 내포지역의 정의에 따라 우선 내포지역을 상정하고 이 글을 시작하겠다.
이러한 내포지역은 지리적으로 볼 때, 북쪽으로는 경기의 연해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차령고개로 공주지방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경기도와 공주 이남에서 형성된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형성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의 내포지방은 정치경제사상종교 등 사회전반에 걸쳐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 사상과 종교의 변화는 내포지방 사회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조선후기 내포지방의 사회변화를 사상과 종교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변화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상과 종교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하여 내포지방의 조선후기의 유학과 불교, 천주교와 기독교의 수용과 확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내포지역의 사람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문화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2. 지리적 환경
1) 내포의 지명유래와 지역범위
내포(內浦)의 사전적 의미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후미진 부분’을 뜻하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안-개’라고 한다. 이러한 내포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지칭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공민왕대에 내포란 용어가 전라도 조운선 및 왜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널리 사용되고 있어 그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포의 개념과 지역범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자료로는 이중환의 『택리지』가 주목된다. 『택리지』의 팔도총론(八道總論)에 의하면 내포의 중심지는 가야산이고 가야산 앞 뒤의 10개 고을을 내포라고 하였다. 즉 가야산 서쪽의 보령결성해미의 3고을, 가야산의 북쪽의 태안서산면천당진의 4고을, 가야산 동쪽의 홍주덕산예산신창 4고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포가 오서산 북쪽의 고을을 제외한다고 보면 보령을 제외한 10개 고을을 내포의 지역범위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가야산 10고을 보다 더 넓은 지역범위를 가리키는 기록도 있다. 『영조실록』에 내포는 호서 18개 군으로 표현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홍주진관(洪州鎭管)에 속한 18개 고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외에도 내포란 용어는 조운제도와 관련을 가지면서 때로는 협의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내포의 지역은 시대에 따라 지역범위가 조금씩 다르게 설정되기도 하였지만, 조선 후기의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정의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10고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포의 지역범위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10개 고을로 설정하고자 한다.
2) 내포의 지형과 교통로
① 해상 교통로
내포지방을 다니다 보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들판 위에 우뚝 솟은 가야산 자락이 멀리에서 보이는데, 실제로 이 일대는 모두 가야산의 자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야산의 지형적 특징에 입각한 전통시대의 지리인식에 의하면, 금북정맥(錦北正脈)에 속한다. 길이는 약 240km이며,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이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끝인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청룡산성거산차령광덕차유령국사봉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보개산월산수덕산가야산)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팔봉산백화산지령산안흥진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