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속요, 형식상 특징, 구성상 특징, 작자와 향유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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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속요, 형식상 특징, 구성상 특징, 작자와 향유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 서론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속요의 개념 및 명칭, 역사적 배경과 전개, 성격과 특성, 형식상 특성, 내용상 특성, 작자와 향유층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더불어 경기체가의 개념, 형식, 시어 상의 특징, 내용상의 특징, 작자와 향유층, 쇠퇴과정에 대해 알아본 뒤 최종적으로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Ⅱ. 본론
1. 속요
1) 개념 및 명칭
고려시대의 우리말 노래 가운데 경기체가를 제외한 나머지를 통틀어 속요라 한다. 일반적으로 그 범주는 《고려사》에 언급된 것과 《악학궤범》,《시용향악보》,《악장가사》등에 실려있는 고려 속악 가사 중에서 순수한 우리말 노래의 서정가요로 국한하고 있다.
속요라는 말은 민속 가요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의 노래가 대체로 민간가요적 성격을 지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노래들을 전하는 문헌은 조선 초기의 궁중음악에 관한 기록들이어서 민간가요적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이유로 속요라는 명칭이 부적당함을 지적하고 그 대신에 장가, 별곡, 고속가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들 또한 전체의 속성을 다 포괄하는 명칭이라 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명칭이 혼란을 보이고 있음은 이 노래들이 각기 매우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두드러진 양식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들을 미루어 보아 가장 널리 통용되고 어느 정도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민속가요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속요라는 명칭이 현재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2) 역사적 배경
속요에는 삼국시대나 통일 신라 이후 사용되었던 향악, 고려에 들어서는 개인 창작 가요 등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대개 고려후기에 생성된 것이며, 이 중에는 민요에서 악장으로 승화된 것이 많으므로 이 노래들의 형성배경을 고려의 사회, 역사적 상황과 관련시켜 고찰해 볼 수 있다. 속요 형성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고려는 전 시대를 통해 국난이 빈번하여 백성들이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이를 해결할 새로운 이념이나 해결 장치가 없었다. 6대 성종과 8대 현종에 걸쳐 거란이 침공했으며, 현종 이후에는 여전히 수차례 침입했다. 더구나 23대 고종부터는 몽고의 침략이 자행되어 백성들은 끊임없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또 앞서 17대 인종 때 일어난 묘청의 난을 위시한 잇따른 내란은 급기야 무신정권을 수립시켜 그 혼란을 더했다. 결국 고려는 원의 속국으로 떨어졌는데 고려의 국교인 불교는 고려 중기 이후 타락하여 배척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지 백성들의 민심을 바로 잡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연정을 내용으로 한 애정가요와 현실 불만, 도피를 주제로 한 가요가 다수 형성되었던 것이다. 속요의 사회 역사적 배경, 김쾌덕 국학자료원
속가 중 청산별곡, 만전춘별사, 쌍화점, 금강성 같은 작품이 이런 시대적 상황과 관련되어 형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고려 여성들의 수난과 이에 따른 비극적 상황을 들 수 있다. 고려는 이별을 강요하는 파행적 사회였다. 고려는 충렬왕 이후 공민왕 초까지 80여 년간 원의 속국이 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공녀 문제이다. 고려는 원의 청에 응하기 위해 결혼도감을 두고 처녀 증발에 힘쓰기도 했다. 따라서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녀가 뜻하지 않게 겪어야 했던 이별이 많았을 것이고 그로 인한 극복과 승화의 방법으로 문학예술의 생성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제재로 한 애정가요가 많이 형성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속가 중 서경별곡, 예성강, 제위보 같은 것이 이런 종류의 속요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