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보급과 시조 인생 노산 이은상鷺山李殷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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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보급과 시조 인생 노산 이은상鷺山李殷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노산은 1903년 경남 마산시 성남동 102번지에서 교육가인 이승규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5세(1918)에는 부친이 설립한 사립 창신학교 고등과를 나와 20세(1923)에 연희전문 영문과를 졸업했다. 24세(1927)에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부에서 청강을 했고, 26세(1929)에 월간 『新生(신생)』의 편집장을 하였다. 노산은 19세(1922)에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를 첫 작품으로 발표하였지만 20세(1923)부터 시조 「고향생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하였다.
노산은 20세부터 시조문학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다. 25세(1928)에는 「시조문제소론」과 「시조단형추의」를 『동아일보』에 각각 발표하여 시조이론 보급에 힘썼다.
그 후 28세(1931)에 수필집 『묘향산 遊技(유기)』를 펴냈고, 29세(1932)에 첫 시조집 『노산시조집』(한성도서)을 발간하였으며, 「시조창작문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시조창작에 기준을 제시하였다. 32세(1935)에 수필집 『路傍草(노방초)』, 『無常(무상)』을 발간하였으며,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35세(1938)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 가고, 1943년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42세(1945)에 사상예비검속에 걸려 감금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해방 이후 광주에서 호남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52세(1955)에 전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63세(1966)에 한국시조작가협회장, 66세(1969)에 대구 청구대학 교수,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위원장, 73세(1976)에 재단법인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다 79세(1982)에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노산은 1932년 『노산시조집』 초판에 이허 중판을 함으로써 전대의 육당 『백팔번뇌』에 이은 두 번째 선인 창작 시조집으로서의 큰 의의와 함께 당시 문단에서 큰 호응을 받은 시다운 작품이 많이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 1970년 『푸른 하늘의 뜻은』 민족문화협회에서 주관하고 금강출판사에서 발행한 시집으로 112편 가운데 「나의 조국 나의 시」, 「당신과 나」, 「파도야」, 「길이 끝났네」 등의 주편들은 한결같이 격정이 솟구치는 애국시이다.
등 3권의 시조집과 1931년 『묘향산 遊技(유기)』를 비롯한 8권의 수필집을 남겼으며, 시집으로 1982년 『祈願(기원)』 노산의 46번째이자, 그의 절필시집인 은 1982년 4월 20일 출판으로 발행됐다. 총 마감 시집에 담긴 42편 205수의 시조사에서 첫 작품 ‘서시’를 필두로 연작시 총 43편은 그 문의가 도도하기만 하다. 한국의 남북 분단의 현장을 1980년 7월 중에 직접 답사 후, 155마일 휴전선의 비원을 생생한 육필로 옮기 이 민족 전체의 아픈 모습이 담긴 작품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을 발간하였다. 이 밖에도 1964년 『노산문학선』 등 3권의 문학선집을 출간하였다.
노산은 시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현대시조를 개척하고 양장시조를 실험적으로 시도한 점 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노산은 평생을 문필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가 남긴 많은 시조는 역작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가곡으로 국민들로부터 많이 불리워지고 있다. 따라서 노산은 다양한 시조 창작을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현대시조를 한층 현대적으로 이끌어 올려 시조를 대중에 보급키 위해 전력한 시조시인이다.
2. 작품세계
1) 민족정신을 선양한 시조문학
노산의 문학은 ‘뜻’을 세우고 체득하여 이 ‘뜻’에서 민족의 사상을 선양하고 민족문화를 수호하려는 것이 핵심이다. 그의 「오늘도 塔(탑)을 쌓고」에서 보면 그 일면을 알 수 있다.
노산은 민족정신을 살리지 못하면 문학하는 일이 헛일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고, 그러한 일이 자신이 할 일이요, 뜻이라 했다. 그는 민족의 사상을 선양하고 민족의 문화를 지켜 내기 위해 문학은 자신을 보이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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