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가장 기본적 인문 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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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인을 위한 가장 기본적 인문 해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해는 문맹의 반대 개념이다. 과거에는 문맹 또는 문맹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당자를 무능자로 비하하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다 긍정적인 견지에서 문해(글을 이해하는 능력)또는 문해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유엔을 위시한 국제통계자료는 비문해율(Illiteracy rate)이란 용어 대신에 최근에는 문해율(literacy rate)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해교육은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에 교육을 받지 못하여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대상자들에 대한 교육이 문해교육이라 할 수 있으며, 일본의 식자교육, 중국의 소맹교육, 영어의 한국술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글자터득은 기본이고 글월을 이해하고, 또한 자기가 뜻하는 바를 글월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과 나아가서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누리며,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적응하는데 필요한 의사소통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을 문해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해는 교육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 단계인 동시에 문화이해와 사회적 적응에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능력이다. 그러므로 평등사회,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에 있어서 모든 국민에게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문해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것은 헌법의 의무교육의 원칙이나 평생교육 이념에 입각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Ⅱ. 야학이란?
야학(夜學)이란 정의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수업을 실시하는 비정규적 사회교육 기관이다. 야간학교가 야간에 운영되는 정규적인 교육기관임에 비하여, 야학은 주로 민간단체가 자원봉사자(학생, 교사)를 교사로 두어 근로청소년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등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비정규 교육기관이다.
ⅰ. 야학의 역사
최초의 야학은 1906년 함흥 보성야학(기록에는 1907년 마산노동야학을 최초의 야학으로 본다)으로 한글·한문·역사를 가르쳐 민족 세력 배양에 주된 힘을 쏟았다. 장소는 학교 교실을 빌려 쓰거나 지방유지 소유의 건물을 빌려서 썼고 경영비도 지방유지가 대부분을 담당하였다. 야학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때 당시 사설야학과 관립야학이 있었다. 관립야학은 행정당국이 일본어 보급을 목적으로 공립 보통학교의 부수 사업으로 운영하였고, 사설야학은 노동자·농민·부녀자 등 소외계층을 위한 농촌계몽운동 성격의 교육이었다. 1905~1919년까지 세워진 야학은 50여 개였다. 당시 애국계몽운동가들이 설립한 사립학교들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을 받아 폐교당하자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많은 야학이 생겨났고, 애국계몽뿐 아니라 민족해방을 위한 민족·민중해방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그러나 1925년 일제는 치안유지법·예비검속법 등의 탄압의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지도자와 단체를 탄압하여 많은 야학이 폐교를 당하였다. 당시 야학을 대중운동으로 이끌어낸 단체는 조선청년당·조선노동공제회·농민조합·신간회 등이다. 1930년대 이후 민족운동이 일제로부터 가혹하게 탄압받자 야학은 주로 지하화하고 민족운동·사회주의운동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되었다.
8·15광복 후 야학은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민족의 생존문제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주로 소작료·토지개혁·식량정책 등 반봉건경제제도 타파를 위하여 분투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회개혁의 성격은 사라지고 대신 도시 빈민을 위주로 한 천막학교가 생겨났다. 천막학교는 뒤에 공민학교의 형태로 발전하였고 주로 문맹 퇴치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야학과 같은 성격의 빈민봉사를 위주로 한 재건학교가 등장하였다. 주로 검정고시를 대비하기 위한 야학으로 오늘날도 검시야학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의 검시야학, 고등공민학교, 새마을학교 등이 당시의 재건학교와 같은 성격이다. 1970년대에는 정규 교육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노동자 등을 대학생·사회사업가가 천막·사회봉사 기관에서 교육하였다. 주로 검정고시대비를 위한 비정규적 학교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차츰 소외의 현실을 인식한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은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게 되고 야학은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1980년대 야학은 검정고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법과 국사를 비롯한 사회과학 관련 수업을 함으로써 본격적인 노동야학의 성격을 띠게 된다. 당시 정권은 야학 활동을 좌경 용공 학생들의 혁명 활동으로 규정하고 야학 학생과 교사들을 탄압했고 1981년 동학·야학회 사건으로 노동자들이 해고되기도 했다. 야학 탄압 사건으로는 1983년 사회운동 성향의 대학생 야학 교사들이 강제 연행된 야학연합회 사건 등이 있다. 이 사건은 야학을 사회주의 혁명조직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은 노동조건과 노동교육의 합법화를 획득하였고 노동야학은 노동단체나 청년단체로의 통합과 해체의 전환을 통해 질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ⅱ. 야학은 노인을 위한 교육
최근의 야학은 가장 기본적인 문해교육을 주로 하고 있으며, 검정고시(중등, 고등) 준비뿐만 아니라 문화·컴퓨터 교육 등 인간관계를 통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하였다. 과거의 야학의 대상은 아동과 농민, 여성이 주요 대상이었지만 현재 실질적인 대상은 60대 이후의 노인이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야학은 단순히 노인을 위한 복지나 취미 생활 교육이 아닌 문맹자인 노인을 위한 교육이다. 야학이 노인을 위한 교육인 가장 큰 이유는 노인복지관(사회복지관)이나 노인대학에서 하는 문해교육을 받지 못하는 노동(단순노무)을 하는 노인, 독거노인 등 낮 시간에는 시간이 없고, 경제적 부담이 커 교육을 받지 못하고, 문해교육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남은 삶을 편안하게 영위해 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기 때문이다.
Ⅲ. 기관소개
ⅰ. 호평제일야학(꿈숲)
호평제일야학(꿈숲)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야학이다. 1989년 10월 개교하여, 배움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소외된 이웃에 사랑을 실천하고자 설립한 작지만 큰 학교로 중/고등 검정고시 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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