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사 고려시대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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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교육사 고려시대의 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려는 호족세력과 서남해의 해상세력을 배경으로 건국하였다. 이때 건국에 기여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태조 왕건이 죽은 이후에 호족과 왕실 간 세력다툼이 있었다. 이런 혼란은 광종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 등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면서 수습되었다. 이후 경종을 거쳐 성종대에 오면 최승로의 시무 28조, 중앙관제의 정비, 지방관파견, 지방호족의 자제를 중앙정부에서 교육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중앙집권화를 달성하였다.
고려사회는 신분이 세습되는 엄격한 귀족사회로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은 귀족이 주도했다. 또한 고려의 사상계를 지배한 불교는 국가불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현세 구복적이고 호국적인 성격으로 인해 쉽게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 유학의 발달
왕건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교이념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물론 고려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불교였다. 하지만 불교는 수신의 도로 신봉하고 유교는 정치, 경제, 외교 등의 현실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병존이 가능했다. 즉, 유교는 고려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보단 지배 관료 계층의 필요에 의해 장려되었고 성종대 이후의 숭유정책은 문치주의로 이어졌다. 또한 고려시대의 유학은 고려의 학문, 교육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성종대 최승로의 시무 28조 이후 정치이념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고려 말 성리학이 전래됨에 따라 불교가 가진 정신적 지도이념의 지위도 넘겨받았다. 여기서 잠시 최승로에 대해 언급하겠다. 최승로의 시무 28조는 주로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고 그것에 대한 시정을 시무의 주요한 과제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최승로의 의식혁명의 내용이 담겨있다. 최승로가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고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불교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며, 고려의 여건이나 풍속에 맞게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정치의 표본을 유학에서 찾았으며 교육을 통해 정치를 규제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려시대의 지성으로 정지상을 빼놓을 수는 없다. 비록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남아있는 문헌이 거의 없지만 그는 유교와 불교를 가리지 않고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외 다양한 학문에도 정통했다고 한다. 어쩌면 유교와 불교의 사상을 가장 잘 조화시킨 고려시대 학자는 정지상이었을 수도 있다.
김부식은 철저한 유교 신봉자다. 그의 성품은 자존심이 상당히 강했다고 한다. 그의 교육사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삼국사기의 기사들에 논찬을 적어놓고 있다. 후세에 남기는 역사서에 주석을 달은 것이니 그 속에 자신의 사상과 교훈이 될 내용을 남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의 교육관을 살펴보겠다. 그는 학문을 한 사람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교육 과정으론 사서삼경을 강조하였고 역사교육을 강조하였다. 이는 역사교육이 인간에게 상당한 도덕교육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의 유학자들은 과거준비 위주의 학습을 하였기 때문에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나 학술활동을 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 불교와 교육(의천, 일연, 지눌)
고려의 사상을 지배한 것은 고려말 성리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불교였다. 또한 국사와 왕사 제도를 통해 왕실과 정부가 불교를 가까이 한 만큼 불교의 사회적 영향도 크다고 봐야겠다. 그래서 이번엔 고려의 고승인 의천, 일연, 지눌의 주장과 저서들을 통해 교육사상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의천(1055~1101)이다. 의천은 왕족출신으로 승려가 되었는데, 그의 식견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이나 그 외의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그렇게 진리를 찾아다니는 그의 품성이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였다는 추측도 있다. 의천이 활동하던 시기는 교종과 선종이 대립하던 시기로, 둘 사이의 대립과 반목을 막는 것이 국사로서 의천의 임무였을 것이다. 내외겸전의 주장은 교선 일체의 초기 모델로 확실한 체계가 잡혀지지는 않았지만 교선통합의 아이디어의 원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대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쟁점은 교육에서 언어가 어떠한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다. 불교 수행의 두 방법을 교육에 접목시켜 보면, 언어를 통한 교육과 비언어적인 교육으로 볼 수 있는데, 두 방법의 절충점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내외겸전의 주장이 의의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읽으며 생각난 것이 교육과정에서 배운 경험중심 교육과정과 교과중심 교육과정이었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어떤 경험이 개인을 건전한 성장에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 중심 교육과정은 스스로의 깨달음과 참선 등의 실천을 강조하는 선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교과중심 교육과정의 전통주의적 주장은 문화유산의 전달을 가장 중요시 한다. 이는 보편적인 가치와 절대적인 진리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진리가 담긴 경전의 공부를 중요시 하는 교종의 수행방법과 유사하다. 이렇게 고려의 불교계에선 보다 나은 수행법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이 교육에서 다루어지는 논의와 비슷하며 실제로 그러한 논의가 고려 민중의 생활 및 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이 교선 수행의 논의가 직관, 통찰에 의한 학습과 점진적인 훈련에 의한 학습 방법 사이의 논의와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