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불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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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불 전략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보 구엔 지압 장군은 베트남을 지켜낸 베트남 영웅이다. 세계 최강 프랑스, 미국, 중국 군대를 차례로 물리치고 베트남의 독립을 지켰다. 그래서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였고, 신문을 발행하던 언론인이었다. 이름은 방패를 뜻하는 지압 이다. 부모님이 외세의 공격을 막아내라는 의미로 지어주었다. 도대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전략의 귀재가 될 수 있을까? 별다른 지원이 없이 어떻게 프랑스 미국 같은 대국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승리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같이 강한 군대와 싸우면서 한 건 별로 없다. 세 가지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그들이 싸우고 싶어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하지 않았고,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웠다.” 이것이 바로 3불 전략의 핵심이다. 하나씩 알아보자.
첫째, 회피전략이다. 최적의 기회를 얻기 위해 적과의 싸움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 것이다. 승리가 확실할 때만 공격하라는 것이다.
1953년 베트남에 프랑스 나바르 장군이 총사령관으로 부임한다. 그는 전투 거점을 디엔비엔푸로 정한다. 그곳은 라오스로 통하는 주요 통로이자, 중국과 연결된 주 보급로가 만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을 점령하면 베트민이 반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다음 세 가지 이유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첫째, 지압의 군대가 5만 명을 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 중 일부만 공격할 것이다.
둘째, 지압 부대의 화력은 프랑스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력하다. 75밀리 이하의 소형대포뿐일 것이다. 그 무기로는 지휘본부를 공격할 수 없다.
셋째, 제대로 된 길이 없는 산길과 정글에서 대규모 현대식무기와 식량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프랑스군은 비행기를 이용해 물자 수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1954년 3월 13일 오후 5시 베트민 군대가 비엔비엔푸에 있는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고 대규모로 공습을 시작했다. 마치 숲에서 포탄을 토하는 것 같이 맹렬했다. 그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어디서 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다. 한 시간 만에 프랑스군은 5백 명이 죽었다. 이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공격 7시간 만에 요새는 무덤이 되었다. 책임자 피로트 대령은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며 권총으로 자살했다. 프랑스는 이들을 게릴라전이나 하던 군대로 생각했으나 그들은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공격을 서두르진 않았다. 동쪽 요새는 당일 날 점령했지만 지휘본부에 대한 공격은 서두르지 않았다. 활주로를 폭발시켜 프랑스군의 보급을 차단했기 때문에 급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프랑스는 불리해졌고 5월7일 최종공격을 했을 때 탄알이 다 떨어진 프랑스군은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총성 없이 전투가 끝난 것이다. 55일만에 베트민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3천명의 전사자와 5천명의 부상자를 냈고, 1만2천명이 포로로 생포됐다. 이 전투로 베트남은 독립한다.
지압은 이 전투를 위해 10년을 준비했다. 때를 기다렸다. 그는 프랑스와 정면 대결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했다. 우선, 부족민을 설득해 독립운동에 가입시켰다. 이를 위해 낮에는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도왔다. 농사도 돕고 가옥수리도 도왔다. 그들의 언어도 익혔다. 간단한 신문도 만들어 돌렸고 노래도 만들어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자 애,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다 이들의 편이 됐다. 수적으로 10만 군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부터 노출시키지 않았다. 적은 수로 국지전만 벌였다. 중국의 도움으로 105밀리 곡사포와 75밀리 대포를 200대나 보유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숨겼다. 어떤 전투에서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모두 디엔비엔푸 전투를 위해서였다.
지압은 프랑스가 디엔비엔푸를 장악할 때부터 베트남 운명을 결정지을 큰 전투를 예상했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과 무기, 식량수송계획을 짰다. 200대가 넘는 대포는 사람들 몸에 줄을 묶어 100킬로미터 정글을 뚫었다. 식량운반은 자전거를 수레로 개조해 진행했다. 재래식 방법으로 오랜 시간프랑스 눈을 피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밤에만 작업을 했기에 프랑스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무기를 지원하는 중공군이 지압을 비판했지만 그는 “우리는 성공이 확실할 때만 공격합니다”라고 이 말을 일축했다. 그들의 지원을 받고 있어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는 3월 하순 우기를 기다렸다. 비가 오면 프랑스 공군의 네이팜탄이 축축해진 정글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비행이 힘들어 보급이 어려워지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략의 핵심 중 하나는 시기다. 지금이 싸울 때인지, 아니면 숨을 죽이고 힘을 기를 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어설프게 나서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지압장군은 이를 잘 했다. 프랑스군과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힘을 기를 때까지 시간을 끌며 기회를 노렸다. 정면대결을 피하고, 게릴라전을 펼쳤다. 주로 밤이나 새벽에 싸웠다. 모두 쉬는 휴일 혹은 명절에 기습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서 결정적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싸움을 길게 보아야 한다.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투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도 그렇다. 함부로 이름을 알리는 것은 위험하다. 인구에 회자되면 경쟁자가 나타나고 다른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든챔피언들은 하나같이 유명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상장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익명성을 소중히 한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이 차지하는 틈새시장을 모른다. 초조함도 극복해야 한다.
도레이가 그렇다. 탄소섬유 사업은 도레이의 효자사업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도레이는 탄소섬유의 잠재력을 인정해 1971년 월 생산량 1톤 규모의 소규모 플랜트를 완공하고 생산을 개시했다. 하지만 판로가 전혀 없었다. 다른 기업 같으면 사업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레이는 인내했다. 70년대는 낚싯대로 근근이 사업을 유지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테니스라켓, 골프채 같은 스포츠용품에 진출했다. 하지만 수요는 적었다. 탄소섬유 시장이 커진 것은 2003년 이후 건축자재, 산업용기기로 채택되면서부터다. 개발한지 무려 40년, 상업생산 한지 30년 이후의 일이다. 당사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탄소섬유는 30년 이상 신소재로 불렸다. 30년이면 다른 분야에서는 수많은 제품이 나왔다 사라지는 기간이다. 그러나 탄소섬유는 늘 신소재였다. 용도는 광범위한데 생각만큼 수요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내심 덕분에 도레이는 승리할 수 있었다.
둘째, 우회전략이다.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다. 회피전략이 숨는 것이라면 우회전략은 회피하는 동시에 멀리 돌아 공략하는 것이다. 회피전략이 수동적이라면 우회전략은 적극적이고 고도화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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