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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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헬레니즘은 그리스에서 왔고 대표적인 인물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 피타고라스등이 있다. 이 인물들은 철학, 사상, 논리를 중시했다. 히브리즘은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고 오늘날 기독교를 이룬다. 히브리즘에서는 윤리, 실천, 행동을 중시했다. 여기서 기독교란 가톨릭(천주교), 정교회, 개신교(프로테스틴트)를 가르킨다. 가톨릭은 이태리, 스페인, 포루투칼, 프랑스등 라틴문명에서 영향을 받았고, 정교회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 피타고라스등 헬라문명 영향을 받았다. 개신교는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을 통해 루터, 칼뱅등의 영향을 받았다.
서구에서는 과거에 “성”을 경시했다. 이는 그리스의 사상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플라톤은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산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하였는데 자신은 남자이고 즉 영혼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플라톤은 남성우월주의가 심했는데 모든 것을 남성 중심으로 이원론 시켰다. 예를들면 영혼/물질, 이성/감정, 남자/여자, 인간/자연, 능동/수동 등의 내용이다. 특히 플라톤은 여자와 남자의 결합은 영혼-물질의 결합이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의 결합보다 영혼-영혼의 결합인 남자 -남자를 더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LGBTQ를 옹호 했다고 볼 수 있다. (L-레즈비언, G-게이, B-양성애자, T-트래스젠더, Q-성정체성) 기독교에서는 LGBTQ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성”적인 부분에서 많은 부분의 헬레니즘 문화가 반영되어 기독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결국 성은 문명적이다.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개념이 다르다. 우리의 육체적인 것은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즉 후천적인 것이다.
2.책요약
고대그리스문화는 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보여준다. 성은 생명의 기본적인 힘 중 하나로서 긍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출산, 육체의 아름다움, 혹은 성적 즐거움이 여러 신들의 모습과도 연관되었다. 그리스인은 누드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끝없이 갈망하였고 그들의 눈에 젊고 건강한 인간의 누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은 좋은 것은 모두 남성에 속해있고, 나쁜 것들은 여성에게로 돌려진다고 했다. 그들은 “남성적”원리가 명확하고 분명하여서 선한 빛의 원리로 이해한 반면 “여성적”원리는 불분명하고 모호하며 불규칙적인 나쁜 원리로 보았다. 또한 플라톤은 여성적 원리인 물질은 형태가 없어서 수동적으로 형태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떤 부정적인 것으로 모아진 반면, 남성적 원리인 형상 혹은 이데아는 불변하는 영원한 어떤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철학적 이원론을 종교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 속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영혼의 자리는 정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뇌와 골수에서 정액이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더 적은 영혼을 가졌거나 아예 영혼을 갖지 않은 것이 된다.
이런 여성학대가 단지 과거의 유교문화권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전통 안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시해야한다. 특히 여자가 남자의 음낭을 잡는 행위는 남성의 우월성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여성의 손을 절단하라는 이런 종교법은 여성혐오주의의 산물이다. 기독교가 여성해방을 위한 가장 진보적인 세력으로 활동한 경우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반대로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일에 앞장 선 경우들도 있다. 지금도 가톨릭 교회와 몇몇 개신교 교단들에서는 여자가 성직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남자를 여자의 지배자로 묘사하는 성서의 구절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보는 성서 전체의 사랑의 전신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의 종교 언어에서도 새롭고 신선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늘에 계신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라고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하나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며, 종교적 언어는 상징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문자적으로 남자인 아버지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단지 언어의 우상숭배일 뿐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 흑인과 백인,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종교인과 무신론자 사이에 막힌 담을 자신의 몸으로 허물고 하나로 만드신 신성한 사랑이시다. 우리의 부적절한 언어는 이 사랑의 광대한 바다곁에서 작은 모래알 하나하나를 만질 수 있을 뿐이다. 신약성서에는 성에 대한 예수의 직접적인 견해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결혼한 것 같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성관계를 비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성적 죄를 지은 자들에게 동정과 용서의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온다. 성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정리한 이는 중세를 대표하는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성에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척도를 제시했다. 자연스러운 성관계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며 올바른 “상대”와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관계의 올바른 목적이란 자녀의 출산이며, 올바른 상대란 결혼한 배우자이며 올바른 방식이란 남녀간의 정상적 성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법률을 통해 매춘을 금지시켰다. 여성의 몸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며,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비인간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법률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성매매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을 노동법에 의거하여 보호하고 사회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낙태의 현실을 심각하다. 낙태는 산모의 건강의 문제로 살인으로 볼 수 없고 그래서 허용해야 한다면 말이 된다. 반대로 낙태가 살인이라면 법률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도 성적인 존재이다. 유교적 관념에서 노인의 성을 부끄럽고 창피한 것으로 덮어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지내다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아무런 법적 보장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의 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야 한다.
3.나의생각
이번 주제에서 종교, 성, 젠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sex는 생물학적인 성을 가르키며 gender은 사회학적인 성을 가르킨다. 생물학적인 성을 바라볼 때 성에 대한 개념이 계속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지금도 변화의 한 과정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개신교에서는 LGBTQ를 여전히 배척하고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미국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오픈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동성결혼문제와 같은 법안이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나는 책에서 보았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의한 자연스러운 성관계에 대한 것을 옹호한다. 성관계는 생명과 연관되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상대,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미디어매체, SNS등의 발달로 인해 어린나이부터 성에 대한 것에 접하고 있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학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학적인 성의 입장에서 성을 바라볼 때 참 많은 세월 동안 여성들이 많은 억압가운데 지내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에덴동산에서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지어졌고, 먼저 죄를 지은 사람도 여자이므로 여자가 남자를 다스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서 메시지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것이지 그 인간이 여자였다는 것을 지목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국 아담도 화와도 똑같은 죄를 지은 것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몇 가지의 단서로 기독교는 여전히 여성목사직을 두고 말이 많다. 오늘날 여성의 인권이 가장 회복된 단계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의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성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잊은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을 돌이켜 봤음 좋겠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보여주신 것들은 약자에 대한 보호였다. 예를 들면 7일중 하루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쉬는 안식일의 내용, 간음 현장에 잡힌 여인의 죄를 질책하지 않으신 내용 등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20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가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약자보호를 위해 힘써야 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나와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해하고 존중하고 함께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인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들에 대해 더 귀 기울여 보고 싶다. 그리고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무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고 이해하는 값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