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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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기행 기행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KTX를 타고 즐겁게 얘기를 하고 절반쯤 왔을 때 예쁜 승무원이 표를 보자고 해서 요즘도 표 검사를 하구나 생각하고 꺼내 보였다. 그런데 잘못된 좌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친절하신 교무부장선생님이 상행선과 하행선 왕복표를 인쇄하여 코스와 함께 주셨는데, 대구행이 뒤로 가게 편집하여 습관적으로 앞에 있는 것만 보고 하행선 기차칸 좌석에 앉아서 수다삼매경에 빠져있었던 것이었다. 재빨리 원래 우리 좌석 칸으로 이동하여 앉아 조금 더 가니 금세 대구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우리의 실수와 친절한 승무원 덕분에 얻은 번거로움을 이야기하며 더욱 즐겁게 대구에 도착했다.
대구시(중구청)은 골목투어라는 지역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나가고 있었다. 1900년대 일제강점기의 우리 선조들의 3.1항쟁운동, 기독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민족시인 이상화, 민족운동가이자 거상인 서상돈 선생 등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대구의 백년 전 옛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동산병원 선교사 박물관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었으나, 우리는 우연한 만남으로 먼저 만났던 재밌는 해설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가이드를 따라 문학기행이 시작되었다.
대구의 근대 역사와 관련된 곳의 첫 번째 목적지는 동산의료원에 있는 선교사들과 관련된 시설들이었다. 청라언덕이 있는 이 지역은 원래 명당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몰래 무덤을 만들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갖다버리기도 해서 지독한 냄새가 나서 동산이 되었는데, 선교사들이 이 땅을 사서 여기에 제중원이라는 병원을 세우고, 학교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선교 활동을 하신 분들이 사용한 주택이 3개가 있었는데, 이 집들을 기증받아서 각각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구 읍성을 철거할 때 나온 돌들을 이 주택을 지을 때 사용했다고 하는데, 100 여 년 전 미국의 전통적인 방가로식의 주택을 보존하고 있고, 미국식 건물에 기와를 얻은 동서양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건물도 볼 수 있었다. 선교박물관, 교육생활 박물관, 의료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는데, 선교사들이 목회활동 외에 의료, 교육, 근대적 생활양식의 개선을 위해 노력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낯선, 참기 힘든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주택을 짓고 생활하던 선교사들의 신앙과 죽은 뒤에도 우리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 조성된 묘역에서 우리 나라를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져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청라언덕에서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을 합창하면서 근대적 지식인의 사랑과 추억을 동시에 느껴보기도 했다. 대구 신명학교 출신의 우리나라 민간최초여성 비행사 박경원, 의료박물관내 낡은 사진으로 마주한 한국 여성 최초의사 박에스더(김점동)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또 미국에서 가져와서 대구사과의 효시가 되었다는 114년 된 사과나무는 링거 등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고, 종 보호를 위해 2세의 나무를 주변에 심어 효시 나무를 보존하고 있는 대구시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목적지 31운동길로 계성학고, 신명학교, 성서학당 등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용했던 동산병원 솔밭 오솔길과 연결된 좁은 길이었다. 100년 전 그 당시 이 언덕 주변으로 학교가 많아 3.1만세 주역인 학생들의 행진길 되었다고 한다. 청라언덕과 이어진 31만세운동길에는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타일 모자이크로 벽화를 만들었는데, 그 날의 함성을 재현하기 위해 1분이 선창을 하여 만세 삼창하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항쟁의 얼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신명학교와 관련 있는 현진건의‘B사감과 러브레터’길을 지나 제일교회, 계산성당으로 통하는 90계단길을 내려가며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높지 않은 곳에서 바라다보지만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였다.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다. 계산성당으로 내려가기 전 세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보도블록도 구경했다. 헬렌켈러의 방문을 비록한 근대의 큰 사건들을 연도별로 올라가며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했다.
도로를 지나니 서양식 성당으로는 1902년 완공되어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사적으로 지정된 계산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한 곳, 스테인드글라스가 옛 한복 입은 한국의 성인, 성녀들의 모습으로 만들어 진 것이 특징이다. 오랜만에 찾은 성당에서 령희샘이 빨리 완쾌될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 다음 목적지는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이상화고택과 서상돈 고택이었다. 본래 이 두 고택은 앞뒷집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근래 새로 지으면서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은 시인이 숨을 거둔 역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시를 쓴 곳이라고 한다. 고택은 유족과 지인이 기증한 유품과 자료 덕분에 그 시절 이상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당에는 민족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서상돈 선생은 구한말 대구에서 시작된 주권 수호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하고 이끌었던 인물이다. 상업으로 성공하여 당시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유력한 경제인으로,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성립학교 등의 설립에 관여하였으며, 투철한 국권수호 정신은 만민공동회 참여와 국채보상운동으로 이어졌다. 아쉽게도 선생의 생가는 근대화 과정에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주상복합건물의 주차장 위에 축소 복원해 놓은 것이다. 두 분의 삶 속에서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과 부자들의 올곧은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구 제일교회 옆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에 들러 한방차도 마시고, 골목길이 너무 길어서 ‘진(긴)골목’에 위치한 보리밥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이드가 꼭 가보라는 미도다방에서 약차를 마시고 대구를 떠나 왔다. 동대구역에서 부산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보다 너무나 좋은 문학기행이었다는 생각을 나누며 같이 오지 못한 선생님들께도 꼭 권해보기로 결의(?)도 해보며 문학기행을 마무리 했다.
대구 문학기행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지은 이상화선생의 고택을 방문하여 선생의 작품과 그 시대상을 느껴보고, 대표적인 투어프로그램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근대골목투어를 하기 위해서 수능을 끝내고 여유있게 가기 위해 계획되었다. 그러나 우리모임 전문가인 령희샘은 아파서, 다른 선생님들은 바쁜 사정이 생겨 4명이 단출하게 다녀왔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는 가을 여행이 된 것 같다. 시대와 인물, 개인의 삶이 어우려진 우리(특히 근대 대구)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잘 만들어진 여행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경험해본 좋은 시간이었다. 계산예가에서 휠체어나 유모차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가 최초로 설치되었다는 알게 되었고, 담아내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소소한 마음이 더해져 더욱 좋은 투어로 자리매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