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바니에미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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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바니에미 기행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핀란드에 있는 로바니에미는 수도인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900km정도 떨어진 곳 라플란드 주에 자리 잡고 있다. 북극권 바로 남쪽에 위치한 이 곳은 현재 인구가 약 5만 8천명이며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특히 연말이면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로바니에미로 향하는 전세기로 인해 핀란드 하늘길이 정체될 정도이고 시간당 최고 30편의 여객기가 핀란드 상공으로 진입할 정도이다.
로바니에미는 북극권의 날씨와 자연, 악티쿰박물관, 루터파교회, 산타마을, 축제 등의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북극권의 날씨라고하면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여름에는 밤에도 대낮같은 백야현상(6월~7월)과 겨울엔 오로라 현상(오로라 예보 3이상일 때 관측 가능)이 일어난다. 악티쿰은 북극 지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학연구센터이자 자연사 박물관이다. 북극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놓은 박물관으로 사미족(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북부와 러시아 콜라반도 등 라플란드에 사는 소수민족)을 비롯, 에스키모 원주민들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루터파 교회는 높은 첨탑이 솟아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 교회 뒷마당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잃은 젊은 병사들 무덤이 있다. 축제는 사미족의 부활절(4월 6일~12일)과 다양한 백야축제(6~7월중), 12월에는 주의 곳곳에서 축제가 열려 시즌에 상관없이 크게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동화 ‘눈의 여왕’의 배경이 되었던 산타마을은 1985년 로바니에미 북쪽 8km지점의 전나무 숲 속에 조성되었다. 산타할아버지는 북극에 산다는 전설에 걸맞게 산타마을엔 북극선이 있다. 산타마을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주 건물을 중심으로 건물 몇 채가 전부다. 하지만 겨울엔 산타 할아버지 집무실이 있는 2층 건물은 산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2~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Im from South Korea!" 라고 하면 “Annyeunghasaeyo" “Busan? Daegu?" ”Do you like Bulgogi?"라고 물어 봐주시기도 한다. 그리고 영어로 대화 하면 된다. 빨간 방울 모자를 쓰고 턱수염을 하얗게 기른 산타할아버지는 산타마을에서 일 년 내내 만날 수 있다.
산타할아버지는 총 5명으로 산타마을에서 관광객을 접견하는 산타, 세계 각국을 순례하며 홍보활동을 하는 산타, 행정 일을 하는 산타, 휴가 중인 산타가 따로 있다고 한다. 여러 명의 산타가 동시에 활동하기 때문에 산타들의 개인 신상명세서는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산타는 선의와 희망을 나누어주는 존재이기에 개인적인 신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앙에는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은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매년 전 세계에서 수십만 통의 편지가 온다고 한다. 편지를 받아 번역하고 산타를 도와주는 엘프들이 있는데 12개국 까지 가능하다. 그 중 한국인 엘프도 있다! 놀랍게도 아직 중국인 엘프가 없어 중국인들은 영어로 보내야 된다고 한다.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받으려면 적어도 11월 30일까지는 보내야 하고 길게 주소를 쓰지 않고 수취인에 ‘산타클로스’라는 단어와 보내는 사람은 영어로 우편번호까지 정확히 적어 자국의 우표 여러 장을 함께 넣어야 한다. 11월부터 편지를 읽기 시작하여 산타에게 친필로 된 답장을 다음 년 봄에 받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우표를 한 장씩 받아 콜렉션 형태로 모아져서 기념품점에서 판매 한다. 그 수익금을 유니세프에 기부되어 빈곤국가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고등학생들의 편지 비율이 현저하게 높다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혹은 ‘내년 수능시험 대박 나게 해 주세요.’ 하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santa.claus@santaclausoffice.fi 이메일도 가능.)
기념품점에서는 여러 종류의 크리스마스카드와 캐롤 송 CD, 순록인형, 산타와 관련된 아기자기한 상품들을 살 수 있다. 선물을 구입하고 일정한 금액을 내면 산타클로스 소인을 찍어 세계 각국 원하는 곳으로 발송해주기도 한다. 어느 나라로 보내든 금액은 같다.
산타파크에서는 동굴을 개조해 공연과 오락장 및 어린이들을 위한 산타 교육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밖에도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을 키우는 농장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순록 경주대회와 같은 각종 이벤트와 공연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산타마을의 입장료는 가족 티켓이 FIM 300(한화로 약 6만원), 성인 FIM 120(한화로 약 24,000원), 어린이는 FIM 90(한화로 약 18,000원)이다. 단, 4세 이하는 무료입장 할 수 있다.
산타마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세기 라플란드에서 목재와 금광이 발견되면서 라플란드의 상업중심지였던 이 곳에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그늘이 졌다. 1941년 핀란드가 소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나치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도시를 침공해 초토화시켜 1946년 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면 벽돌 부스러기와 통나무집 몇 채만 남은 폐허였다고 한다. 당시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가 이곳 재건에 나섰지만 침체된 도시의 경제는 회복되기 어려워 보였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겨울스포츠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산타로 분장한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초상화를 그려주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착안하여, 시측은 산타 브랜드 화 전략을 추진했다. 이 도시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가진 ‘산타클로스가 사는 곳’으로 홍보하면서부터 발전 되었다. 탄력을 받아 1998년에 산타마을이 문을 열었다. 산타할아버지를 주제로 한 마을과 공원을 만들어 이야기가 아닌 눈에 보이는 산타와 순록 썰매를 등장시켜 대박을 터뜨렸다. 로바니에미시가 산타를 관광 테마화 하고 전략화한 지 약 10여년 만에 산타마을은 세계 최고의 겨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노키아가 겨울잠을 자고 산타가 활동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로바니에미가 ‘산타마을’로 유명해진 것은 지난 1927년이다. 핀란드 라디오 방송의 한 아나운서가 “산타클로스는 로바니에니 마을에 있는 코르바툰 투리 산에 살아요.”라고 말하며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는 진짜 산타클로스가 로바니에미에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타클로스가 살던 집이 발견되었습니다.”하는 등 계속해서 1930년대부터 라디오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내보내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50년대 들어 로바니에미는 이를 바탕으로 ‘북극 센터’를 지어 산타클로스 마을의 첫발을 내디뎠다. 로바니에미시는 로바니에미로 오면 언제든지 산타클로스를 만날 수 있다고 마케팅 하였고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 ‘산타클로스는 로바니에미에 사는 것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눈이 많고, 순록도 라플란드의 자연을 사랑한다. 로바니에미가 있는 북극권은 백야와 오로라를 볼 수 있어 산타클로스도 좋아한다.’고 말이다. 초기 산타클로스 마을의 고객은 핀란드 자국민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권에서 온 이들이 전부였다. 이를 보고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산타마을이 생겼지만 가장 먼저 도입한 핀란드는 이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조금씩 유명세를 타며 84년 브리티시 에어라인 소속 콩코드 여객기의 라플란드 취항을 기념해 영국 ITV가 이 마을을 화제로 다루었고, 이어 91년 BBC방송이 집중 취재를 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눈을 구경하기 어려운 영국, 남유럽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여 유럽 각지 관광객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요즘엔 관광객 56%가 외국인이고 미국, 호주, 중국, 일본사람들도 많이 여행한다고 한다.
겨울 휴가란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상식을 깨고 오히려 혹한의 북극여행을 선택하도록 만들어 버린 이 관광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다. 우선,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지자체의 노력 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 최악의 기상조건을 가진 나라의 도시에서 아이디어 하나로 노키아와 함께 핀란드의 얼굴이 되었다. 겨울이 성수기지만 여름에도 그 인기는 식지 않아 연 40억달러, 우리 돈 4조 8000억원을 벌어들이는 테마관광지가 되었다. 로바니에미의 주민들은 직접 앞장서고 토론을 거쳐 관광도시의 면모를 더욱 갖추도록 노력한다. 시의 상징인 산타할아버지는 주민들이 직접 투표를 해 뽑으며 신비감을 지키기 위해 보안은 철통같이 유지된다. 또 시를 대신해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해줄 업체들을 선정하고, 전문가에게 마케팅을 맡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도시가 알려지며 지자체는 대기업들을 유치시키는데 성공 하였다. 개인용 제트기 제작사인 봄바르디어 사와 스노우바이크업체인 랩셋이 대표적이고 수많은 리조트들이 들어왔다. 로바니에미를 관광이 아닌 사업 목적으로 찾는 이들의 숫자도 2001년 6만4044명에서 2007년에는 15만1682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