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묘 감상문1

 1  반딧불의 묘 감상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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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반딧불의 묘 감상문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약 22년 전 에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이 래 저래 말이 많은 영화이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자신들을 피해 자라 여기며 군국주의를 미화하고자 한 것이냐, 아니면 휴머니즘을
그리고자 한 것이냐에 따른 논쟁이 이 영화를 늘 따라다닌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때에 접한 경험이 있다. 그때 일본의 군
국주의가 무엇인지 잘 몰랐을 때여서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전쟁의 비극성을 그린 영화라
고만 단순히 여기며 지나갔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나서 다시 본 이 영화는 단지 휴머니즘만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이 영화는 영화 전반에 걸쳐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
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공습을 당해 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 어가는 모습만 보여주어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만을 고집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군국주의를 미화 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 일본 천황’을 위해 무엇인가 거들어야 한다는 대사,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가 낫다는 대사 -에서 당혹스러웠다.)
전쟁의 시발점이 어디부터였는지를 부인한 채 전쟁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등장시켜 동정심을 유발함으로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합리화시킨 이 영화는 한국인인 내가 보았을 때 그저 일본이 괘씸할 뿐이다.
이 영화는 심지어 역사왜곡의 느낌도 갖게 한다. 전쟁의 전반적인 것을 다루지 않고, 피해자 모습의 일본 장면만을 잘라서 영화한 것이 걸린다는 점이다. 영화의 기획의도가 어떻든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 영화에서 배경으로 하는 전쟁, 그리고 그러한 전범국의 해군 장교를 아버지도 둔 아들, 전쟁에서 비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는 남매. 이렇게 다양한 면의 배경 속 에서 남매의 비극적인 운명만을 강조하여 전쟁은 저 뒤편으로 숨겨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실은 일본인의 입장에서만 보고 싶은 현실만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부분 말고, 단순히 내용과 등장인물에만 집중을 해 보면 전쟁의 참혹함, 비극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남매가 부모 없이 방공호에서 생활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눈물을 찔끔 흘릴 것이다. 전쟁 후 모든 것을 잃고 둘만 남게 된 남매에게 세상은 이미 그 전과 같지 않고 강퍅해진 인심은 누가 죽어가든 상관치 않고 내 가족만 돌본다. 모든 것을 잃은 두 남매는 굶주림만이 남았고,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만이 다가 올 뿐이다.
14살의 세이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전쟁 중에 여동생과 살아가기 위해서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세이타를 보고 한국 문학 중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몽실언니」의 몽실이의 모습과 겹쳐졌다. 책 속 몽실이도 한국전쟁 중 배다른 여동생과 살아남는 주인공이다. 둘 다 동생과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할뿐이다.
‘전쟁’이라는 무서운 상황은 전쟁을 일으킨 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세이타와 몽실이 같이 어린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피해를 준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배고픔으로 고통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슬픔을 제일 먼저 겪는 일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약자) 가장 큰 피해자 인 것이다.
이 영화의 논쟁이 되는 점을 모두 배제한 채 ‘전쟁’이라는 소재만 보았을 때, 전쟁은 어찌되었던 간에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라는 점을 매우 공감하며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22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느껴질 수 없을 만큼의 기술과 그림, 등장인물들의 움직임 등 매우 섬세한 영화였다 라는 점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술에 감탄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