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감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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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감자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이 소설의 처음 구절이자 복녀가 간통을 저지르는 장소를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사실 나는 그랬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나 ‘데미안’의 인물들에 마음을 몽땅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런 나에게,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라고 날마다 일러주는 학교에서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복녀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매혹이었다. 친근한 막내이모 같은 느낌에,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 밭깨나 얻어 주면 종자만 뿌려 둔 뒤에는 후치질도 안하고 김도 안 매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대로 거둬서 ‘금년에 흉년입네’하고 전줏집에는 가져도 안가고 혼자 먹어 버리곤 하였다.」 와 같은 구절에는 수다떨듯 혀를 쯧쯧 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은 이미 흘렀고 대중의 한 명, 네티즌의 구성원이 된 나에게 칠성문 밖과 해리포터의 호그와트는 이제 너무나 다르다. ‘칠성문 밖 가난한 10대 유부녀, 간통하고 살해당해’라는 헤드라인 밑의 기사를 보고 나는 뭐라고 해야 했을까? ‘역시 그 동네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돼’? ‘셋 다 미친 것 같애’? ‘돈이 사람 죽이네’? 어쩌면 가장 먼저 미간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리고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한 다음, 솔직히 말하자면 잊어버렸을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에.
처음 복녀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예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 없어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중략)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잘난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 적당히 기품 있고 참한 처녀. 그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집갈 나이의 여성’의 적절한 기준이다. 내가 복녀를 더욱 애틋하게 여겼던 이유가, 나 또한 ‘책 많이 읽고 참한 선생님 딸’이라는, 더 잴 것도 없이 평범하고 흡족하게 수용되는 지루한 이미지를 깨고 싶은 본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흔히들 ‘이대로만 자라 달라’는 요구를 누군가가 만족시켰을 때, 사람들은 ‘정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변으로 끝나는 것은 대개 공익광고이지 소설이 아니듯, 글의 중간에서 복녀는 이렇게 변한다.
「복녀의 얼굴은 더욱 예뻐졌다. (중략) 어쩌고저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디라. 자 꽤주디, 그 대신 응? 알아 있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줄 테야.” “글세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 진보되었다.」
복녀는 ‘역변’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왕 서방을 비판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거짓으로 생각될 만큼 왕 서방과의 간통에 적극적이었고, 남의 남편이 된 영감의 신혼 첫날밤에 찾아가 도끼를 휘두르는 상식적으로 불가해한 짓을 무척이나 서슴없이 하기에 이른다. 한번 좀도둑질보다 두 번 살인이 덜 무섭다고, 금지된 길에는 무슨 송진이라도 깔아놓은 것처럼 사람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매력에 있게 마련이다. 적당히 순수하면서 기품 있던 복녀는 막나가는 안하무인 상태에서 돌연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서와 같이 화자가 복녀의 달라진 성격을 묘사할 때, ‘그의 성격은 이렇게 나빠졌다’가 아닌
「그의 성격은 이렇게 진보되었다.」
라고 언급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반어법을 쓴 것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천사 같다’라는 꼬리표가 붙어야 유리한 사회가 있고 ‘악마’라는 꼬리표가 붙어야 살아남기 용이한 사회가 있다. 복녀는 후자의 경우였다. 또한 작가는 복녀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중략) 혹은 그런 일은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신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같은 좋은 일이 이것뿐이었다. (중략)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도덕관이 바뀔 때의 복녀의 기운은 매우 긍정적이다. ‘삼박자’처럼 여러 박자를 다 갖춘 일을 행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운일 것이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한 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는 구절은, 복녀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자신감조차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복녀가 자신의 이용할 수 있는 도구(성별, 나이, 외모)를 이용해 최소한 순간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감과 경제적의 여유를 획득했을 때 우리는 그를 마냥 ‘속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질문을 그대로 현대 사회에 끌어와 던져보아도 답하기가 참 애매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일수록, 담기는 용기의 모양에 따라 그 모양이 더욱 잘 변한다. 1원 2원을 앞에 놓고 마냥 신바람 내던 복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신혼 방에까지 찾아가는 치기를 보이는 복녀는 어쩌면 부도덕한 인간관계의 기본인 ‘치고 빠지기’조차 알지 못했던 가장 순진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복녀의 사망 뒤 마지막 장면의 탐욕에만 집중하면 피가 거꾸로 솟겠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그보다 복녀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싶다. 김동인의 ‘감자’는 ‘환경 결정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로 꼽힌다. 그 말대로, 복녀가 알프스 산에 살았다면 하이디가 되었을 수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독자의 입장에서, 복녀와 복녀를 둘러싼 ‘탐욕’은 그 ‘순진함’과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어 오히려 떨쳐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복녀만큼은, 우스운 상상이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과거를 모두 잊고 진심으로 배우고 말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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